[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58)] 성명순 '장미'
장 미
성 명 순
불타오르는
앙가슴 속 사연이야
차마 말을 못 해
앵도라진 붉은 입술로 피었네
차마 말을 못해
가슴으로 들으라고 피었네
사람마다 취향이 같을 수가 없다. 사진가들이 선호하는 카메라들도 각양각색이다. 잘 찍지도 못하면서 사진을 좋아하는 까닭에 제법 여러 대의 카메라를 지니게 되었다. 손방인 주제에 무엇을 찍느냐에 따라 그날의 카메라를 선택한다. 그리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이웃집에 마실이라도 가듯 카메라를 메고 굳이 골목길만 골라 누빌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굳이 이른바 명품이라고 부르는 카메라보다 황학동 벼룩시장의 길가에서나 팔 듯한 옛날 카메라에 싸구려 필름을 넣어 찍은 사진이 그 어느 명품 카메라로 찍은 사진보다도 따뜻함을 전할 때가 있다. 카메라의 가격이 얼마냐보다도 어떤 마음으로 찍느냐가 더 중요하지 싶다. 그러나 자타공인 ‘아, 이 카메라’ 하는 명품이 있다.
꽃도 그렇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꽃이 다르고 상황과 감정에 따라 그 꽃에 대한 정서적 반응이 일정치가 않다. 그런데 언제 보아도 ‘아!’ 하고 아름다움에 경탄케 하는 꽃이 있다면 그 필두로 장미를 꼽아야 할 것이다.
위의 시는 성명순 시인의 시 「장미」의 전문이다. 전체 2행 3연으로, 글자 수를 전부 세어봐도 48자밖에 안 되는 간결한 시이다. 우선 간결하게 정제된 시의 형태가 군더더기 없이 아름다운 장미를 닮았다.
‘앙가슴 속 사연’이다. 앙가슴이 아프면 명치끝이 저리며 숨이 막히는 듯하다. 그 속에 숨긴 내력은 ‘불타오르’는 사연이다. ‘차마 말을 못’하는 속마음이다. 그 붉은 속사정이 ‘앵도라진 붉은 입술로 피었’단다. 그 사연은 아무리 길게 늘어놓아도 귀로는 들을 수가 없다. 꽃도 ‘차마 말을 못’한다. 그래서 ‘가슴으로 들으라고 피었’단다.
무슨 군더더기 사족이 더 필요하랴. 장미의 앙칼진 아름다움처럼 짧은 시로, 보여줄 장미의 내면을 다 보여주었다.
유월이다. 일년 중 장미가 가장 만발하는 계절이다. 카메라에 필름 한 통을 새로 넣어야겠다. 굳이 장미축제라는 데를 찾을 생각은 전혀 없다. 화서동이다. 서문 못 미쳐 팔달산으로 향한 골목길 파란 대문이 있던 집. 그 집 담장 위에도 그해 유월의 어느날처럼 장미 넝쿨이 올라앉았을 것만 같다. 굳이 카메라에 담지 못해도 좋다 ‘차마 말을 못 해/앵도라진 붉은 입술로 피었’던 ‘앙가슴 속 사연’이다. 나 또한 장미에게 가슴으로 들으라고 차마 말을 못 하고 서성이다 돌아온다 해도 그로써 족한 유월이다.
성명순 시인
2012년 『청암문학』 신인상
황금찬 문학상, 한국농촌문학상, 수원예술인상 등 수상
시집 『시간여행』, 『나무의 소리』, 『시시하게 살자』
한·독 시집 『하얀 비밀』
세종학교육원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