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59)] 이경렬 '산에 들면 모두가 그대의 빛깔이 된다'

김준기 수원시인협회 회장

 

산에 들면 모두가

          그대의 빛깔이 된다

                              이  경  렬

 

산빛에 물들기 위해 산에 든다

동자꽃 진한 빛깔에 물들고

모시꽃 연한 빛깔에 물들고

아니면 저 유순한 나무 빛깔이면 어떠랴

투명한 샘의 물빛이거나

이끼 푸른 바위 빛깔이면 어떠랴

모두가 그대의 빛깔인 것을

 

그대의 빛깔에 온전히 물들고 싶다

물들어, 산같은 그대가 되고 싶다

 

위의 시는 이경렬 시인이 2013년에 펴낸 시집 『삶이 사랑이고 사랑이 삶이라고』에 들어 있는 「산에 들면 모두가 그대의 빛깔이 된다」의 전문이다. 시집은 산행에서만 시상을 잡은 116편의 시들이 그 산들의 들꽃으로 혹은 아름드리 교목으로 옹골차게 들어차 있다. 

시집의 표제도 다른 이들의 그것보다 길지만, 시집 속에 들어 있는 시의 제목들도 한결같이 길다. 아무리 짧아도 10자는 넘고 길면 제목의 글자 수만도 20자 가까이 되는 시들도 있다. 그 연유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는 사방이 산이다. 산자락을 내려왔다 싶으면 들이 있고, 들이 끝나는 자리에 또 산이 이어진다. 산과 산이 겹치면서 요란스럽지 않고 부드럽게 만들어내는 능선의 흐름은 그 자체가 유장한 가락이다. 끊일 듯 끊이지 않는 농현(弄絃)과도 같은 울림이다, 평생을 산에서 그 울림을 들으며 산과 같이 호흡한 시인이 선택한 제목도 그래서 그리 유장하고 제목에 이미 본문 못지않은 이미지를 품으려 함인지도 모른다.

시는 제목에서부터 산을 ‘그대’라는 2인칭 예사높임으로 의인화한다. 그리고 그 ‘산에 들면 모두가 그대의 빛깔이 된다’고 했다. ‘모두’라고 했다. 예외가 없다. 나는 평소 ‘모두’라는 말을 꺼린다. 절대적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일종의 미신이라는 게 내 평소의 지론이다. 고로 예외가 없는 ‘모두’는 우리의 합리적 회의마저 앗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예외가 없다. 산에 든 자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산의 빛깔에 물들 수밖에 없다. 그 ‘산빛에 물들기 위해 산에 든’것이다. 누구는 ‘동자꽃 진한 빛깔에 물들고’ 또 다른 누군가는 ‘모시꽃 연한 빛깔에 물’든다. 

그리고 ‘어떠랴’이다. ‘아니면 저 유순한 나무 빛깔이면 어떠랴/투명한 샘의 물빛이거나/이끼 푸른 바위 빛깔이면 어떠랴’이다. 인세의 탐욕에 물든 게 아니고 ‘모두가 그대의 빛깔인 것’에 물들었는데 거기에 무슨 득박과 불만족 그리고 호와 불호의 가림이 있겠는가. 기왕이면 ‘그대의 빛깔에 온전히 물들고 싶다’고 했다. 남김없이 온전히. 그리고 마침내 ‘물들어, 산같은 그대가 되고 싶다’며 산과 일치가 되는 경지를 갈망한다.

요즈막의 산은 확실히 만화방창 흐드러진 봄의 산보다는 재미가 덜하다. 그러나 여름 산은 또 그 나름대로 빛깔이 있다. 산길을 오르다가 푸른 나무 그늘에 앉아, 땀에 젖은 소맷자락을 짜면 왕성한 생명의 푸른 물이 주르르 흘러내릴지도 모를 일이다. 

동자꽃이 피기에는 아직은 이르다. 또 그 꽃은 산 깊은 곳으로 들어 가야나 볼 수가 있다. 아무 꽃이면 어떠하랴. 또 꽃이 아니면 어떠하랴. 불편한 몸을 끌고서 깊은 산은 찾는 일은 언감생심이다. 주말에는 광교산 자락이라도 찾아 산의 치맛자락 끝자리 나무 그늘에라도 앉아볼 셈이다. 산빛에 물든 채 내려와 보리밥 한 그릇에 탁배기 한잔 생각 있는 분은 연락 바랍니다. 

 

이 경 렬 시인

경기시조시인협회 회장

한국문협, 한국현대시인협회, 경기시인협회, 수원시인협회 회원

경기문학인상, 수원시인상 외 다수 수상

시집 『내 강물의 거주지를 위하여』 외

백두대간 완주 수상록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