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130)] ‘외길일지라도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시집 한 권에도 시인의 숱한 노고와 모색이 배어 있다. 정성과 집중으로 한 편 한 편 썼고 다듬고 보완했을 뿐만 아니라, 출간을 준비하면서도 그 직전에도 같은 고려와 배려를 시인은 한 편 한 편에 시도한다. 소설 등도 그러하다. 예술의 숙명이며, 시는 편폭이 짧아 더욱 그러한 듯. 자신이 쓴 시라는 의식이 점차 희미해지고 자기 시의 독자가 되어 읽으며 퇴고하는 시 자체를 대상으로 한 조정의 헌신. 시집을 받으면 시인의 절차탁마와 그 과정에서 있었을 시인의 독자로서의 모습을 연상하고, 긴장하며 첫 시부터 읽는다.
딱총나무 여린 꽃들 바닥에 점점이
채 피어나지 못한 것들이 내려앉는다
외길일지라도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오래 남는다고 했던 것들 중에 변하지 않는 초록만큼
색을 잃어버린 갈잎도 소중하다
자기를 버티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메마른 존재들이 아름답지 않다고 한다면
어떤 푸름이 자기를 처절히 갱신하려 들까
한 여름 누각 옆의 낡은 계단을 오르며
언뜻 떨어지는 빗방울들
제 오줌으로 체온을 내리는 매미들의
타고난 습성이다
비워놓아야 울리는 발성도 한 철인 것을
달려가던 끝길에서 울고 온 날 느꼈다
언 발에 오줌 누기처럼 간절한
산 것들의 치열함
딱총나무 아래를 지나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
도대체 하나뿐인 인생에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지
잠시 생각에 잠긴다
- 「매미 오줌」/홍시율
곧 우리도 이 시의 화자처럼 매미 우는 여름 숲의 딱총나무 아래에서 빗방울 같은 물방울을 맞을 것이다. 그것이 ‘매미 오줌’인 줄 모르는 독자들도 있고, 알아도 아직 그 정체를 모르는 독자들도 있을 텐데, 이 시를 잘 감상하려면, ‘매미 오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인터넷 해당 사이트에서 다음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매미도 노린재목이라서 나무수액을 먹는데 수분을 과하게 섭취하기 때문에 아주 오줌배출량이 많고, 여름철 기온이 오르면 오줌배출로 수분을 증발시켜 체온을 내리기도해서 오줌을 자주 싼다.”
즉, 매미는 하루에 무려 자기 몸무게 300배나 되는 수액을 빨아먹고, 그러고는 그 수분이 체온을 올리자 생존과 활동을 위해 자기 몸의 그것을 마구 배출한다는 것이다. 거듭되는 이 행태를 화자도 3연 4행에서 ‘타고난 습성’이라고 하지만, 1연에서부터 부정과 탄식의 태도로 비난한다. 매미에게 막무가내로 수분을 과도하게 뺏긴 ‘딱총나무’는 자신의 그 ‘여린 꽃들’을 지키지 못해, ‘여린 꽃들’이 ‘채 피어나지 못한’ 채 고사해 떨어져 내리고 있다고 진술한다. 이 묘사에 함축된 깊은 동정에 우리는 공감하면서 ‘매미 오줌’을 과도한 욕망과 비열한 이기의 산물로 취급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화자는 3연 5, 6행에서 딱총나무를 동정하듯 매미를 동정하여 우리의 주목을 끈다. 또 그 운명을 탄식해마지 않는다. ‘비워놓아야 울리는 발성도 한 철인 것을/달려가던 끝길에서 울고 온 날 느꼈다’라고. 즉 그런 후안무치한 범죄성 무리를 감행해보았자 결국 허망할 뿐이다, 7년 만에 겨우 지하에서 벗어나 지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기어코 울음으로 입증하고 과시하지만 그 때가 겨우 ‘한 철’에 불과한데, 매미 너는 그 ‘한 철’이 끝날 무렵에야 알게 되누나...
그런데 그 시행은 사실 누구의 목소리인지 모호하다. ‘느꼈다’의 주체가 전지시점의 화자라고 하기 어색한 측면이 있다. ‘한 철’ 운명을 뒤늦게 깨달은 ‘매미’가 그 주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매미’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매미’의 진술이라면 맥락 없이 갑작스러워 역시 어색하다. 그래서 우리는 대상의 토로를 서술자가 대리하는 자유간접화법의 일종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복합 화법은 단순한 대행이 아니라 서술자가 자신의 같은 인식을 미묘하게 포함하고 있어, 3연 5, 6행은 ‘매미’만이 아니라 화자의 만시지탄(晩時之歎) 고백으로도 간주할 수 있다.
그리하여 화자는 다시 자신의 목소리로 ‘언 발에 오줌 누기처럼 간절한/산 것들의 치열함’이라고 울컥 토로한다. ‘언 발에 오줌 누기처럼’ ‘간절’하고, ‘치열’한 그것이 무엇인지 애매하지만 매미의 그 줄기 찬 절규, 그 한 어린 원통한 ‘발성’을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미묘하지만 화자의 시선에 간과할 수 없는 확대가 있다. ‘산 것들의’가 고지하듯 그 ‘간절’과 ‘치열’의 주체가 ‘매미’만이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생물이며, 우리마저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쩌면 언뜻 우리 자신의 모종 행태를 불쑥 떠올리게 되며 불편한 동의 비슷한 심정이 될지 모른다. ‘언 발에 오줌 누기처럼 간절’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혐오스럽기도 하면서.
그래서인가. 화자는 이제 하고 싶은 말을 할 준비를 마쳤나보다. 이어지는 마지막 4연에서 결연하게 이전의 태도로 되돌아 와,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만다. 물론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딱총나무 아래를 지나며/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도대체 하나뿐인 인생에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지/잠시 생각에 잠긴다’고. ‘매미 오줌’을 맞다가 고개 들어 딱총나무와 딱총나무에 악착 엉겨 붙은 그 매미를, 그리고 그 사이 언뜻 보이는 하늘도 쳐다보다가, ‘잠시 생각에 잠’기는 ‘사람들’.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자신의 삶에서 자신의 어떤 행태가 혹 저 ‘매미’의 ‘오줌’과 같았을지 모른다고 깨닫는 ‘사람들’. 불운아들인가. 그런지 아닌지 잘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연민과 공포 비슷한 정서가 일어날 것 같다.
그런데 이 시의 결미는 이 4연이 아니다. 앞에 위치해 있는 2연이다. 화자는 이 도치의 구성으로 2연을 강조하고 있다. 즉 우리 인간은 타인에게 덕성의 의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매미처럼 그런 우매한 비극을 ‘타고난 습성’으로 저지르는데, 뒤늦게나마 이 비리의 모순을 각성하고 제지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외길일지라도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초록’색을 ‘잃어버린 갈잎도 소중하다’ 운운은 바로 그 뜻이 함축된 심사의 표출이다. ‘메마른 존재들’도 ‘처절히 갱신하려 들’면, ‘아름답지 않다’고 할 수 없다는 건 그 부연. 이에도 ‘언 발에 오줌 누기처럼 간절’하고 ‘치열’하다거나 그래야 한다는 뜻도 있는 듯하다.
끝으로 췌언이지만 4연 3행 ‘하나뿐인 인생’에 삶의 일회성과 유한한 한계가 강조되고 있는데, 바로 그래서 매미의 그 행태 같은 우행(愚行)을 늦었지만 이제부터 더 각성하여 제지하자는 함축이 병렬 강조되어 있다. 그 어조는 권유조가 아니라 무슨 탄원조로 감지된다. 이 어조를 우리가 이미 주목했던 3연 5행, ‘비워놓아야 울리는 발성도 한 철인 것을’을 상기하고 연관시켜, 이 시 결미의 일부로 음미하면, 이 시 화자의 의도에 더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