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성 여민동락(302)] 부채 단상(斷想)

정준성 주필

"부채 보낸 뜻을 나도 잠깐 생각하니/가슴에 붙는 불을 끄라고 보내도다/눈물도 못 끄는 불을 부채라서 어이 끄리"

1764년(영조 40)에 편찬한 작자미상의 '고금가곡'에 전하는 노래다.

절절한 사랑의 표현이지만, 조상들은 예부터 더위를 쫓는 도구하면 부채를 으뜸으로 쳤다.

바람을 일으키는데 이만한 도구가 없어서였다.

그래서 선조들은 여름살이 필수 품목으로 여겼다.

뿐만 아니다. 먼지 같은 오물을 날려 청정하게 하므로, 재앙을 몰고 오는 액귀나 병을 몰고 오는 병귀 같은 사(邪)도 쫓는다고 믿었다. 

단오에 부채를 선물하는 풍습도 여기서 비롯됐다. 

이때 선물하는 부채를 벽온선(僻瘟扇)이라 불렀는데 '염병을 쫓는 부채'라는 뜻이다.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로서의 본래 기능을 유지하면서 다양하게 진화시켰다.

의례·장식·차면(遮面)·예술 용도로 사용해서다.

대표적인 것이 소선(素扇)이라는 부채다. 

국상이나 친상을 당하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 하여 얼굴을 가리기 위해 사용했는데, 부채에는 그림이나 글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가 하면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 도구로 생각해 사랑도 깊었다. 그런만큼 예술가치도 뛰어났다.

화가·서가·문인들의 부채 예술품이 대표적이다. 

이런 부채는 고려시대부터 국교품으로서 한.중.일간 최고의 교역상품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결의나 서약을 할 때 마음을 묶는 증거물로도 이용됐다.

주로 쥘부채인 접선(摺扇)이 사용됐다. 다수의 부챗살이 한데 결속된다해서 일심동체를 다짐할 때 쓰였다.

부챗살 하나하나에 결의자가 수결(手決)함으로써 변심을 경계했다는 뜻으로 '일심선(一心扇)'이라 불렀다.

그런가하면 자신의 충성이나 효성, 의리의 일편단심을 알리는 수단으로도 썼다. 이런 부채를 '단심선(丹心扇)'이라 했다.

우리나라 부채사용의 역사는 1000년이 넘는다고 한다. 

견훤이 고려 태조에게 공작선(孔雀扇)을 보냈다는 첫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을 정도다.

아무튼 역사와 의미는 이러 하지만 어찌됐건 부채는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로서 명성이 더 크다.  시쳇말로 '바람콘트롤러'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초선(芭蕉扇)'은 으뜸이다. 

서유기에 나오는 '바람콘트롤러'이기 때문이다.

파초선은 비록 가공의 부채지만 무시무시한 신공을 갖추고 있다. 

평범해 보이는 부채지만 한 번 부치면 천둥번개가 치고, 두 번 휘두르면 태풍이 몰아치며 세상이 뒤집힌다. 

산을 삼킨 불길도 파초선 앞에선 촛불이요 등잔불이다.

하지만 이런 부채가 현실에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선인들은 파초선을 권력에 빗대 은유했다. 

어떻게 휘두르냐에 따라 세상의 질서가 요동친다며 남용도 경계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엊그제 '파초선'을 언급하며 공직자들의 책임 의식을 강조했다.

공무원에 주어진 권한을 국민을 위해 사용하라는 경고다. 

계엄을 거치면서 해이해진 공직사회의 기강을 볼 때 당연한 지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작은 우여곡절 끝 새 정부가 들어선만큼 대통령부터 엄중 실천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