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화성행궁 북군영 옆 느티나무는 이제 신목(神木)이 됐다
화성행궁에는 신풍루 앞마당의 3정승 느티나무 말고도 오래된 느티나무가 또 있다.
행궁으로 입장하고 나서 안마당 오른 쪽에 서있는 느티나무다. 600년 이상 된 나무라고 하는데 1982년 경기도 보호수 5-3으로 지정됐지만 화재 등으로 생명을 잃어 현재는 지정이 해제됐다.
수원 지역 고로(古老)들은 이 나무가 행궁이 건축되기 전부터 자리를 지켜온 신령스런 나무로 여기고 있다. 화성행궁을 지은 것이 1789년이었으므로 행궁을 짓기 시작했을 때 이미 400여년이 된 고목이었다.
영목(靈木), 신목(神木)이라고도 불린다. 따라서 잎이나 가지를 꺾으면 신령의 노여움을 사지만, 간절하게 기도를 하면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전설도 있다.
무속인들은 이 나무를 팔달산 당산신으로 모시면서 당산 기도처로 꼽지만 무속행위를 할 수 없으므로 두 손 모아 기도만 하고 간다. 그래서인가 나무 곁에는 많은 사람의 소원이 담긴 종이들이 줄줄이 달려 있었던 적도 있다. 그래서 ‘소원나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나무에 소원지를 거는 것이 일본 신사에서 행해지는 풍속이라며 못마땅해 하기도 했지만 본인과 가족, 이 나라를 위해 소원을 비는 그 마음만은 순수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느티나무는 힘겨운 세월을 겪었다. 그것도 자연 재해나 일제의 정책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 의해서.
이 나무는 일제 강점시기에 행궁을 헐고 지은 수원경찰서 내에 있었다.
내 20대 초반에 황당한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 아마도 시화전 허가 문제 때문에 수원경찰서에 갔던 것 같다. 당시는 유신시대였으니까.
일을 마치고 나오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보니 한 직원이 쓰레기를 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소각장이 어이없게도 느티나무 고목의 큰 구멍이었다. “저러면 나무가 죽는데...” 내 안타까운 시선에도 직원은 아랑곳없이 끝까지 쓰레기를 태운 뒤 바가지로 물을 한번 휙 끼얹더니 사무실로 돌아갔다.
원래 이 나무는 지상에서 3~4미터 높이에서 5개의 가지로 자라 멋진 수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수원경찰서 측은 느티나무 가지가 무성해서 경찰서 건물을 가리고 낙엽이 떨어져 청소하는 불편을 준다는 이유로 전지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일을 맡은 사람이 느티나무를 보자 욕심이 생겼다. 건물 쪽으로 뻗어있던 제일 큰 가지를 잘라냈다. 그러니까 나뭇가지를 다듬는 차원이 아닌 나무의 수형을 망쳐버린 것이다. 이에 지역 신문기자들이 분노해 기사화시키는 바람에 수원경찰서에서는 난리가 났다고 한다. 이로 인해 나무를 벤 업자는 한동안 숨어 지냈다고 한다.
다음은 수원시 화성사업소장과 팔달구청장을 역임한 김충영 씨의 증언이다.
업자는 자른 가지를 목공예하는 사람에게 팔았다. 목공예를 하던 사람은 이 나무의 중요성을 알고 나무를 잘 말려서 문갑을 2개 만들어 하나는 팔고 하나는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남은 일부는 곡반정동 개인주택 2층 계단을 만드는데 사용 했다고 한다.
수원시는 이런저런 수난을 겪은 나무가 고사 상태가 되자 방부처리를 해서라도 보존하기로 했다.
그 후 느티나무는 크게 상처 입은 몸이면서도 수호신처럼 행궁을 지켜왔다. 고목은 화성행궁이 복원되면서 수원시의 각별한 관리를 받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2001년 월드컵을 1년 앞두고 말라죽어 가던 나무에 새순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부터 이 나무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영험한 기운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당시 화성사업소에 학예사로 근무하던 김준혁 현 국회의원이 나무의 유래를 팻말에 적어 세우자고 해 팻말을 세우게 되었다.
나희덕 시인은 이런 시를 썼다.
잔가지 끝으로 하늘을 밀어 올리며 그는
한 그루 용수처럼 제 아궁이에서 자꾸만 잎사귀를 꺼낸다
번개가 가슴을 쪼개고 지나간 흔적을 안고도
저렇게 눈부신 잎을 피워 내다니,
시커먼 아궁이 하나 들여놓고
그는 오래오래 제 살을 달여 놓는다
낮의 새와 밤의 새가 다녀가고
다람쥐 일가가 세 들어 사는,
구름 몇 점 별 몇 개 뛰어들기도 하는,
바람도 가만히 숨을 모으는 그 검은 아궁이에는
모든 빛이 모여 불타고 모든 빛이 나온다
-나희덕 「聖(성) 느티나무」 부분
나희덕 시인이 이 작품의 시적 대상으로 삼은 나무는 ‘창녕 덕산리 느티나무’라고 한다. 하지만 행궁 안 느티나무 고목이 연상되지 않는가. 시인이 이 느티나무 앞에 하루 종일 앉아서 바라보다가 쓴 시라고 해도 믿겠다. ‘번개가 가슴을 쪼개고 지나간 흔적을 안고도/저렇게 눈부신 잎을 피워 내다니’ ‘시커먼 아궁이 하나 들여놓고/그는 오래오래 제 살을 달여 놓는다’라는 부분은 행궁 안 느티나무의 수난사와도 일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