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131)] ‘10년도 넘게 산 아파트 옆집이 이사를 간다’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이웃사촌이 멀리 사는 사촌보다 낫다”는 말이 여전히 우리 삶에서 유효하지만 오늘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지는 못하고 있다. ‘아파트 옆집’과 잘 지내는 사람들이 없지 않지만 말 그대로 ‘사촌’의 정리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아니 서로 알기는 알고 마주 치면 인사라도 하는 사이라면 다행일지 모른다. 다음 시에서 화자와 ‘옆집’ 사람은 더욱이 같은 층에서 ‘10년도 넘게’ 살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오늘 처음’ ‘인사’한다. 그것도 화자의 ‘옆집’이 ‘이사’가는 헤어지는 날에. 두 사람에게도 무슨 변명거리가 있겠는데, 그래도 기이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옆집’ 사람이 ‘이사’ 갔던 날이거나 가는 날에, 우리가 그 두 사람과 아주 달랐거나 다르다고 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일어나지 않은 아침같이

10년도 넘게 산 아파트 옆집이 이사를 간다

 

그때 분명하게 있었던 것들이 사라져 갈 때 

이삿짐 나르는 소리에 나란히 있던 경계를 들키며

이웃이라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란다

 

어느 생엔가 그런 꿈들을 나누어 가진 것도 같아

돌이켜 보면 자주 마주 쳤지만 마주한 적 없는

벽 하나 사이의 비밀

생기 없던 여러 겹의 나날들이 깨어난다

 

마중 나온 엘리베이터에서 스쳐 갔던 눈빛

불빛을 몰고 지난날 밤에만 순해지고

모든 바깥은 벽으로 모여들었지

 

서로가 빠져있는 짐칸에 실려 

고개를 떨구면서 반대 방향으로 흘러 내렸던 

포장된 감정들이 섞여 있다

 

우린 매일같이 밤이거나 하루 종일 낮이었던 사이

너무 캄캄하거나 아주 밝아서 보지 못했지만

오늘 처음 한 인사처럼 잘 몰라서 가까이 지냈지

  - 「어느 생엔가 그런 꿈」/권성훈

 

 우리도 그럴 테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10년도 넘게 산 아파트 옆집이 이사’ 간다는 사실을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알고 화자는 놀란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현상의 변화, ‘분명하게 있었던 것들이 사라’져 가서 그렇다. 그런데 화자는 ‘한 번 더 놀란다’. ‘이삿짐 나르는 소리’를 들으며, 문득 ‘나란히 있던 경계를 들키며/이웃이라는 사실에’. 아니, 그 세월 동안 화자는 ‘옆집’을 ‘이웃’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증빙 아닌가. 

 우리는 이윽고 우리의 형편을 고려하기도 하며 ‘않았다’를 ‘못했다’로 고치게 되는데, 그러나 그러고 나서도 의혹을 지우기 어렵다. ‘나란히 있던 경계를 들키며’라고? 그렇다면 화자는 ‘옆집’ 사람과 자신 사이에 늘 ‘경계(境界)’를 설정하고 있었다고 하겠다. 하기야 화자는 3연 2행에서, ‘돌이켜 보면 자주 마주 쳤지만 마주한 적 없’었다고 하고, 3행에서 ‘벽 하나 사이의 비밀’ 운운하고 있어, 무슨 사고가 생길까봐 적대시 비슷한 경계(警戒)까지 하고 있었다고 우리가 화자를 의심하여도 화자는 별 말이 없을 것 같다. 단 화자의 그 의식은 ‘들키며’에서 알 수 있듯, 자신도 모르고 있다가 이윽고 자신의 양식(良識)에 들켰다는 것이기에 잠재되어 있던 의식이긴 하다. 

 그래서인가, 우리는 그 면모를 긍정할 수는 없지만, 오늘 우리 삶의 상호 소외와 불신 경향을 상기하면서 화자의 고백에 오히려 동정할 수 있다. 나아가 4연 1행 ‘엘리베이터에서 스쳐 갔던 눈빛’과 5연 ‘서로가 빠져있는 짐칸에 실려/고개를 떨구면서 반대 방향으로 흘러 내렸던/포장된 감정들이 섞여 있다’ 등을 읽으면서 우리의 모습도 보는 듯하다.

 우리는 이 시 전체에 걸친 화자의 유감과 관련 성찰에 공감하게 되는데, 말미 6연에서 제고될 것 같다. 화자는 이사 가는 ‘옆집’ 사람도 자신 같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우리 ‘사이’가 ‘매일같이 밤이거나 하루 종일 낮’이었다고 은유하는데, 그렇게 ‘너무 캄캄’했고, ‘아주 밝아서’, 바로 그래서, ‘오늘 처음 한 인사처럼 잘 몰라서 가까이 지냈지’라고 탄식한다. ‘가까이 지냈지’를 애매하나마 반어로 이해할 수 있겠는데, 대체 서로 무엇을 ‘잘 몰라서’ 그랬다는 것인가. 

 우리는 궁리 끝에 3연 1행 ‘어느 생엔가 그런 꿈들을 나누어 가진 것도 같아’에서, 화자가 추정하는 화자와 옆집 사람이 ‘나누어 가진’ ‘그런 꿈들’을 주목하고, 그 ‘꿈’이 2연 3행 ‘이웃이라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란다’, 즉, ‘이웃’이라면 사이좋은 삶의 동반자로 지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자책하면서 새삼 상기하게 된 그 ‘이웃’과의 정의(情意) 향유가 아닌가 역시 추정할 수 있다. 게다가 화자는 ‘아침에 일어났’으나 늘 ‘일어나지 않은 아침같’은데, 자신과 같이 ‘10년도 넘게 산’ ‘옆집’ 사람이 바로 그렇게 활기 없이 ‘이사’ 가는 모습을 무척 유감스러워 한다. 

 이 시를 그렇게 감상하고 나서도 우리는 모종 다른 여운에 감겨 있다고 느낄 수 있다. 3연 1행에서 읽은 대로, 나누어 가진 같은 그 꿈을 ‘어느 생엔가’라며, 현실 너머 차원에 관련시킨 국면 때문일 것이다. 불가의 삼세(三世)를 굳이 연상하지 않더라도 화자에게 공명한 유감이 일시에 확대되며, 이 우주의 무한한 시공에서 이웃으로 사는 인연을 결코 무심하게 여길 수 없으며, 결코 가볍게 여길 수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