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133)]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작년 이 즈음에 육사(陸史) 이원록(李源祿 : 1904-1944)의 「청포도」[『문장(文章)』 1939년 8월호]의 “내 고장”이 어디인지를 두고 논쟁이 있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 시의 작중 화자는 1연에서 “내 고장 칠월은/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이라고 하였다. ‘내 고장’의 ‘7월’ 정경을 익어 가는 ‘청포도’, 그 푸르고 영롱하게 생동하는 이미지로 집약하여 독자의 시선을 일거에 사로잡았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청포도’는 2연에서 그 속성까지 제시된다.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라고... 이 심상치 않은 진술은 그 ‘청포도’가 보통 청포도가 아니게 한다. 일상의 청포도를 초일상의 차원과 접맥시키면서 우리의 첫 인식을 크게 개신 심화한다.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는 무성하고 탐스럽게 달린 청포도 송이의 묘사이면서도, ‘이 마을’ ‘전설’의 현현이기도 하다. 즉 화자는 ‘익어 가는 청포도‘를 보며 잠재되었거나 혹 잠시 잊었을 수도 있을 ‘마을’의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시현되고 있다고 여긴다.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는 우리의 ‘청포도’ 인식을 더욱 확대 고양한다. 가까운 하늘이 아니라 저 아스라한, 보일 듯 말 듯한 ‘하늘’이, 그것도 ‘꿈꾸며’ ‘청포도’ ‘알알’ 마다마다에 서려들어 뿌리 내렸다고 한다. ‘전설’이 어떤 전설인지 궁금하고 하늘이 꾸는 ‘꿈’도 무엇인지 생략되어 있지만, 우리의 상상은 오히려 분방하게 확장된다. 2연의 이 부연 묘사와 관련 여운이 이 시의 압권이며 이후를 관통하는 맥락이 아닐까 한다. 

 이 시의 ‘고장’이 육사의 고향으로 널리 알려진 안동[도산면 원촌]이 아니겠다는 주장은 그 직후의 3연,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을 근거로 한다. 안동은 내륙 지방이기에 ‘푸른 바다’ ‘흰 돛단배’ 운운 묘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다를 직면하고 돛단배가 자주 오고갔으며 일제 때 규모가 큰 청포도 단지도 있었던 항구 지역, 육사가 1929년에 출옥하고 친척이 살고 있어 요양하였고 1936년에 여행을 했기도 해  포항이 아무래도 이 시의 ‘고장’에 부합된다는 주장이 일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안동설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안동에는 ‘주저리주저리’라고 수식할 정도로 ‘전설’이 많고, 1799년 작성 문헌에 청포도 재배 이야기가 실려 있는 대로 청포도 밭이 있어 왔으며, 거기서 누워 청포도나무 사이를 쳐다보면 그 모습을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즉 ‘푸른 바다’란 환유와 의인화를 적용한 형상 제시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이란 연계도 그 연상으로 역시 가능하다는 것일 것이다. 

 두 설 다 어색하다. 안동설은 지적대로 안동에서 ‘푸른 바다’와 그 바다의 ‘흰 돛단배’를 볼 수 없어 수용하기 난처하다. 또 3연 1행의 ‘푸른 바다’는 비유가 아니라 의인화[‘가슴을 열고’]가 개재되었지만 작중 실경 묘사이며, 3연 2행의 ‘흰 돛단배’도 마찬가지이다. 포항설은 육사의 가문이 대대로 원촌에서 세거하였고 육사도 16세까지 살았기에 역시 수용하기 난처하다. 또 포항의 포도밭이 일제의 식민 관련 자본으로 개발된 사실을 모를 리 없었을 육사가 출옥 직후에 그 근방에서 요양했다고 해서 뒷날 이 시를 쓸 때 그곳을 회고하며 굳이 ‘내 고장’이라고 하였다고 인정하기도 어렵다고 하겠다. 

 「청포도」의 ‘고장’ 논란은 시를 시인의 자전(自傳)으로 간주하고 시의 화자를 시인으로 여기는 관점에서 비롯된다. 이 논란의 문제점은 이미 두세 차례 직접 간접 논의한 대로 시가 시인의 창작, 즉 심미와 가공에 기초한 허구라는 본체론을 상기하지 않거나 배제하려는 관성 때문에 연속 발생한다. 

 시의 화자가 시인일 수 있고 시의 이야기가 시인의 실제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런 시들이 있고 그렇게 볼 육사의 시도 있다. 육사는 일제 식민시대 국난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극복을 지향하며 실제 현실에서 싸운 보기 드문 투사[17차 투옥]이며, 만해처럼 일류 시인이기도 하다. 육사의 시가 모두 육사의 신변과 독립운동에 관련된 저항과 곤경, 각오와 비전을 노래했다고 보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포도」의 ‘고장’ 논란이 발발한 것은 시가 수발할 뿐만 아니라 육사의 뛰어난 봉공과 헌신의 삶에서 기인하였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 논란은 이역 북경의 일제 감옥에서 분명  강도 높게 저항하다 강도 높은 고문을 당해 순국한 시인 육사에게 헌정하는 후세의 불가피한 감사 취지의 에피소드라고 하겠다. 「청포도」는 ‘고장’ 논란을 떠나 우리 시사의 명작이자 국민 애송시이기에 전국 어디에서도 그 시비를 더 개설해도 좋을 것이다. 

 제4연에서 화자는 ‘고달픈 몸으로/청포(靑袍)를 입고 찾아’ 올 ‘내가 바라는 손님’을 부각한다. ‘흰 돛단배’를 타고 올 이 ‘손님’은 입은 ‘청포(靑袍)’로 미루어 벼슬아치 부류의 신분이 높은 사람이라고 이해하는 견해가 있는데, 상용하던 백포(白袍)가 아니라 하필 청포인 것은, 그는 도래 예정자, 화자가 내방을 기원하는 인물인데, ‘청포’, 즉 푸른 도포의 푸른색은 그 희망을 의미해 선택한 시어라고 하겠다. 다시 말해 ‘고달픈’ ‘손님’의 도래는 현재 실현되지 않는 상태이고 그는 예정된 희망의 존재이기에 그가 입은 도포는 흰색이 아니라 푸른색이라야 어울린다. ‘청포’는 한편 ‘청포도’, ‘푸른 하늘’과 나란히 연계되는데, 살펴본 대로 푸른색은 ‘주저리주저리 열리’는 ‘전설’의 색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이 시에서 ‘7월’의 색이다.

 끝으로 우리는 2연과 3연의 구분과 장면 전환을 주목하며 그 사이에 함축되어 있다고 할 메시지를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7월과 그 이후. 7월은 무더위 와중에 만물을 두루 비추는 강렬한 햇빛 아래 지상의 열매들이 저대로 본연의 미래로 성숙하는 계절. 이 시기에는 ‘전설’의 완전한 현현과 ‘청포’를 입은 ‘손님’을 영접하기 위해서는 태양 못지않게 작열하는 인내와 의지가 필요한 때이다. 그래서인가 이 시의 3, 4연에서 화자는 예언자로도, 진술은 예언으로도 여겨진다. 「광야」의 4, 5연에도 그런 면모가 있다. “지금 눈 내리고/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다시 천고(千古)의 뒤에/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