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방화수류정’ 현판, 이젠 원본 글씨로 바꾸자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의 시설 가운데 ‘백미(白眉)’로 꼽히는 방화수류정의 원본 현판 탁본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를 비롯한 화성연구회 회원들은 1956년 새로 만든 현재의 방화수류정 현판에 대한 느낌을 주고받곤 했다. 당대의 서예가 중 한명인 원곡 김기승(金基昇, 1909 ~ 2000)의 글씨인 만큼 운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왠지 방화수류정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도 나왔다.
원래 방화수류정 현판은 정조 때 명필로 이름을 떨친 조윤형(曺允亨, 1725~1799)의 글씨로 제작된 것이다.
조윤형은 1794년 정조의 명령에 따라 현판 글씨를 썼다. 그가 쓴 방화수류정 글자는 굵은 획이 호방하고 거친 듯 하면서도 여유와 운치가 흐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조윤형은 당대 궁궐 편액과 화성의 주요 건물 현판 글씨,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의 책 제목을 썼다. 정조의 명으로 어진(御眞)의 표제, 현륭원의 지문(誌文), ‘춘추’의 원문도 썼다.
강세황은 조윤형이 고예(古篆)‧해서‧행서‧초서의 여러 서체가 모두 높은 경지에 오른 명필이라고 극찬했다.
조윤형이 세상을 떠나자 정조대왕은 그를 위해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성인의 필법으로 ‘춘추’를 지어 놓으니/유학의 도가 조선으로 와 해와 별처럼 빛난다./큰 글자로 특별히 쓰는 새로운 범례 만들었더니/문충공의 손자(조윤형)가 글씨를 얼마나 썼던고.
김문식 교수(단국대 사학과)는 “조윤형은 정조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았던 명필가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는 와중에 원본 현판은 사라졌다. 지금 걸려있는 현판은 1956년 김기승에게 글씨를 의뢰해 만든 것이다.
이에 수원화성박물관은 사라진 방화수류정 현판의 원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러던 중 방화수류정 현판 탁본 원본이 전시된 특별전시 ‘광평대군과 그의 후손들’(밀알미술관)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됐다. 곧바로 전시장을 찾아가 조사한 결과 원본 현판 탁본임을 확인했다. 화성박물관 관계자는 “자료를 검토한 결과 1920년대 방화수류정 사진 속 현판과도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말했다.
소장자와의 협의도 잘 이루어져 유물 복제와 전시 활용을 허락받았다. 수원시는 내년에 유물 복제작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김세영 학예연구사는 이 탁본이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지대하다고 말한다.
“원본 현판과 거의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도 중요 건축물의 현판은 탁본해 소장했다”는 것이다.
수원시는 그동안 수원화성의 팔달문·장안문·화서문·창룡문·화홍문·화성장대·연무대·방화수류정·화양루 현판과 행궁 현판 보수 작업을 거쳐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정조대왕이 수원화성과 장용영 군사의 모습을 보고 지은 시를 새긴 ‘어제화성장대시문’ 현판도 복원해 서장대에 게시한 바 있다.
이번에 발견된 방화수류정 원본 현판 탁본이 진품으로 밝혀진 이상 현판교체를 긍정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현재의 현판도 가치가 있는 만큼 없애지 말고 방화수류정 한쪽에 별도로 전시하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