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65)] 서정화 '장안長安 경로당'

김준기 수원시인협회 회장

 

장안長安 경로당

                                          서  정  화

 

  누가 고도리를 꼭꼭 감춰 두고 있을까

 

  조심스레 패를 뜨고 종달새 먹으려 움켜쥔 손, 우산 든

사나이에 난데없이 꿩이 날고, 에라이, 똥이나 먹자, 어머

나, 자뻑을 다 하시네, 쌍피에 흘깃대는 눈들, 바닥에 깔린

휘파람새 아무도 먹지 않아 입맛 다시며 안절부절못하다가

그만 봉황도 놓치고 어안이 벙벙, 솔광을 뚝심 있게 내려놓

자 두루미가 날아가니 환장하겠네, 공산은 어디 갔는지 철

새가 훨훨 날아가고, 헐, 홑껍데기만 남았구나

 

  오늘도 끗발 세우려다 어느덧 해는 지고……

 

중장의 길이로 보아 사설시조이다. 조선 후기 평민층을 주요 작자층으로 하던 사설시조는 율격은 물론 주제나 수사적(修辭的) 표출방식이 전대의 지배계층이었던 사대부의 평시조와는 사뭇 달랐다. 유교적 계도나 관념적 자연 예찬이 아니라 소재 자체를 실생활에서 찾으려 했다. 지배계층의 무능과 부정부패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담기도 했으며, 신산한 삶이었지만 익살을 바탕으로 하는 토로와 때로는 조선의 성리학적 세계관에서는 금기시되던 남녀 간의 애정에 대한 노골적 표현까지 그 안에는 그들만의 진솔한 감정이 담겨 있다.

위의 시는 서정화 시인이 지난해 연말에 펴낸 시집 『3D 렌티큘러』에 담긴 「장안長安 경로당」의 전문이다. 사설시조만이 지닐 수 있는 미적 특질이 오롯이 담겨 있다. 제목 그대로 노래가 배경으로 삼은 무대는 장안 경로당이다. 동네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심심풀이 고스톱을 치고 있다. 

이미 국민적 놀이가 되다시피 한 고스톱의 룰을 새삼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비록 점에 10원짜리 고스톱이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돈다. 종달새만 먹으면 5점짜리 고도리가 난다. 바라는 패가 나오기를 학수고대하며 패를 뒤집었지만 엉뚱하게 비광이 뜨고, 하는 수 없다 똥을 먹었는데 이른바 뻑이 되었다. 시쳇말로 민폐를 끼친 셈이다. 다른 이들의 눈총이 사납다. 기대와 또 그와는 다르게 뜨는 패들의 연속에서도 제법 배짱도 부려보지만 바닥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홑껍데기만 남았다.

그렇게 거듭되는 판으로 노인들의 시간은 오늘도 속절없이 지나간다. 기왕이면 끗발 좀 세워보려 했는데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진다. 도박이 아니다. 판돈 천원도 안 되는 돈으로 하루 진종일 긴장을 놓지 않게 되는 놀이이다. 정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치매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갑자기 젊은 시절 벌였던 시화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벌써 40여 년 전 이야기이다.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여자 후배 한 명이 다녀가면서 방명록에 남긴 짧은 문장 하나가 가슴을 찌른다. ‘선배님 비 뻥에 똥입니다.’였다. 흔히 나이롱뻥이라고 하는 화투에서는 먼저 숫자가 높은 패를 버리는 사람이 이긴다. 화투 다섯 장을 들었는데 그중에서 두 장이 12를 의미하는 비이고 한 장이 11을 뜻하는 똥이라 하면 그 수의 합이 심각하다. 그런데 비 뻥에 똥으로 단번에 33을 감한다면 그야말로 무거움을 일순에 덜어내는 일이다. 생각해 본다. 그녀의 축원대로 나는 내 삶에서 무거움을 덜어내고 가벼운 영혼으로 살았던가. 

사나흘 무섭게 쏟아붓던 빗방울이 그치고 서쪽 하늘 저녁노을이 장엄하다. 저 저녁노을은 어쩌면 오늘도 모여 화투패를 돌리고 있을지도 모를 장안 경로당의 창문에도 걸렸을 것이다. 

아, 비워야 하는데, 

자꾸 움켜쥐려만 하는 하루는 아니였나.

 

 

서정화 시인

2007년 백수(白水) 정완영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 『3D 렌티큘러』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