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야기입니다. 실화입니다. 내일 아침부터 전교생이 매일 수업 전에 운동장 트랙을 힘껏 돌아 개인별 횟수를 기록하라고 했습니다. 체력은 국력이고, 건강하지 않으면 정신이 해이해지기 쉬울 뿐더러 나중에 끈질기게 공부할 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존경받는 교장이 어쩌다가 기이한 생각을 했을까 의심했는데 상부 지시라고 했고 과연 이웃학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장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마땅찮은 지시가 아닙니까? 아침부터 땀을 뻘뻘 흘려서 기진맥진해서는 공부가 제대로 될 리 없으니까요. 행정을 그렇게 하는 교육장, 교장이 있다면 교육을 방해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그런 행정가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런 일은 어떻습니까? 교장이 실습지라는 이름의 땅을 학년별로 분할해서 교사들로 하여금 선호하는 작물을 ‘자유롭게’ 가꾸어보라고 했습니다. 자유롭게! 선생님들은 교재연구, 수업준비 시간이 부족해서 난처할 때도 있습니다. 바로 옆에서 그 선생님들을 방해하는 건 행정가가 할 일은 아니겠지요. 남들이 보면 어색하고 엉뚱한 짓을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그 지위, 그걸 교육자로서의 이상실현으로 여겼을까요?
직접적인 예를 들겠습니다. 아침마다 온 학교에 국악이 울려 퍼지는 학교가 있었습니다. 그 학교 교장은 우리 땅에서 나는 우리 것이 좋은 먹거리이듯 우리 정서, 느낌, 감성이 담긴 우리 음악을 통해 음악의 모국어를 찾아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모범적인 교육입니까?
A 교육감은 ‘명품학교’라고 칭찬했습니다. 우리 모두 명품학교를 만들자고 외쳤습니다. 음악으로 유명한 학교, 전국대회 금메달리스트가 나오는 학교, 스키를 잘 타는 학교, 피리를 잘 부는 학교, 합창단이 방송을 타는 학교, 태권도가 전문인 학교, 전교생이 한자 선수인 학교, 그런 교육을 하는 학교… 행정가들은 이상한 용어 만들기, 외래어로 이름 짓기를 좋아하지만 교육학사전에서 명품이란 용어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감히 대놓고 반대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교육감은 신이 나서 개별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물론 온 학교 교장들을 불러 모아 연설할 때 한국인이면 다 아는 피겨스케이팅 선수와 축구 국가대표선수를 마치 자신이 가르쳤거나 그들이 정규 공교육을 받아서 그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인 양 내세우고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한 명의 인재가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리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주장은 장차 나머지 수십만 명은 놀고먹게 될 것처럼 들렸습니다.
반대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B 초등학교 체육 선생님이 육상에 소질 있는 아이에게 학교 대표선수로 전국대회에 나가 이름을 날려보자고 하자, 그 아이 어머니가 달려와서 단호히 거절해버렸습니다.
유명인사는 어릴 때부터 싹을 보여주는 건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우리 아이는 아직 어떤 면에서 뛰어난 아이인지 다양한 경험을 쌓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 위험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디 이름 모를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활동을 전개해주기를 간청했고, B 초등학교 교장과 여러 선생님들은 그 학부모로부터 한 수 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장이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요? 위에서 높은 분이 내려다보면 기분이 좋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 지역 혹은 여러 학교가 모자이크를 한 것처럼 알록달록하게 보일 것 아닙니까? “보세요, 우리는 교육의 다양성을 이렇게 잘 실현하고 있습니다!”
동의하시겠습니까? 위에서 보면 다양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어느 것 한 가지에만 몰입하는 학교는 개별 학생들에게는 곤혹스러운 학교일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체육을 많이 하고 싶은 아이도 있지만, 미술, 국어를 많이 하고 싶은 아이도 있고, 책을 많이 읽고 싶은 아이, 다른 공부보다 과학에 몰두하고 싶은 아이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잠시 국악이 울려 퍼질 뿐이다? 국가는 꼭 가르쳐야 할 음악을 이미 정해놓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자유로운 그 시간에 잠시 다른 걸 시켜보고 싶은 선생님, 아침이니까 조용히 어떤 생각을 깊이 해보고 싶은 아이는 어떻게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