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아, 그땐 그랬었지!” 팔달문 전시실에서 추억에 잠겼다
덥다. 참 덥다. 낮 기온이 섭씨 40도에 가깝다. 밤에도 열대야가 계속돼 잠을 설치고 있다. 에어컨을 틀면 되지만 전기요금폭탄도 무섭고, 에어컨 바람을 오래 쐬면 몸이 찌뿌듯해져 웬만하면 선풍기에 의존하고 있다.
폭염일수는 해가 갈수록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한 신문 사설에 지난해 그린피스 동아시아 리서치 유닛이 우리나라 주요 25개 도시를 대상으로 조사한 여름철 폭염 발생일수, 지속도, 강도의 변화를 소개한 바 있다.
조사 결과 최근 10년 간 도시별 평균 폭염일수는 51.08일로, 20년 전(2004~2013)의 20.96일 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폭염의 지속도 또한 증가하고 있다. 최근 10년 동안 이틀 이상 연속 발생 폭염일수는 40.56일이었다. 20년 전인 2004~2013년 10년간엔 14.68일이었다. 2.7배 이상이 늘어난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수원시의 경우 5~9월의 체감온도 35℃ 이상 발생일수는 1974~1983년 10년간 하루도 없었다. 그런데 1984~1993년 1일, 1994~2003년 8일로 늘더니 2004~2013년 22일, 2014~2023년 71일로 급속 증가했다.
인류가 ‘어머니 지구’에 몹쓸 짓을 계속한 인과응보다.
당연히 온열질환자는 크게 늘고 있다. 지난 5월 15일부터 7월 21일까지 집계된 전국의 온열질환자(누적 기준)는 모두 1717명(사망자 9명)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637명)보다 2배가 넘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폭염일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제 한 살 반이 된 우리 손자 현이가 견뎌야 하는 미래가 지극히 걱정된다.
어제의 과음으로 해장을 하러 종로 근처 손맛 좋은 영암 아주머니가 하는 밥집에 가서 점심을 먹은 뒤 무더위를 무릅쓰고 팔달문으로 향했다. 거기서 ‘팔달문, 가까이 늘 우리 곁에’ 전시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공간은 수원시가 ‘팔달문 성곽 잇기 사업’ 구간의 유휴 건축물(팔달문 버스정류장 앞)을 활용해 팔달문의 역사와 가치를 알리기 위해 조성했다.
지난겨울 한 시민이 “팔달문 성곽복원을 위해 수원시가 매입한 건물이 공실로 방치돼 있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했으면 한다”는 의견을 냈다. “방치 건물을 재정비해 수원화성을 홍보하는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 전시공간으로 꾸민 것이다.
팔달문 옛 사진, 팔달문시장의 변화를 기록한 사진, 팔달문 건축구조와 해체보수 과정을 볼 수 있는 3D 영상 등을 볼 수 있다.
고마운 것은 이 전시장이 무더위쉼터로 개방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원시는 여름철 폭염에 지친 시민들을 위해 이곳을 9월 30일까지 임시 무더위쉼터로 개방한다. 팔달문 시장은 노인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다. 따라서 무더위쉼터로 개방한 전시장은 온열질환에 취약한 노인들에게 오아시스와 다름이 없다.
더불어 시민들에게 팔달문 성곽 잇기 사업을 자연스럽게 알리는 효과도 있으니 좋은 아이디어다.
전시장에 있는 사진들을 보며 추억에 잠겼다.
팔달문 시장의 노점상 아주머니들을 보며 세상 떠난 어머니를 생각했고(내 중학생 때 어머니는 거기서 찐 옥수수를 팔았다), 중앙극장 사진을 보며 거기서 만날 약속을 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이승을 떠난 이들도 많다)
당시 중앙극장 앞은 추억의 약속장소였다. 여기서 만나 대폿집으로 향하거나 영화를 보았다. 가끔씩은 극장 지하의 중앙다방으로 가서 신청곡과 사연을 쪽지에 적어 DJ에게 전하기도 했다.
극장 옆 골목을 통해 팔달산으로 향하곤 했다. 가위 바위 보를 하면서 계단을 오르고 산 중턱 회주도로를 걸었다. 눈 오는 날, 벚꽃 잎이 흩날리는 봄날 밤, 단풍잎이 예쁘게 물든 가을날엔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이곳으로 향했다.
성벽 아래에서의 감미로웠던 첫입맞춤이나 계단에서 부축을 빙자한 포옹...내 얘기는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라.
이처럼 추억은 풍요로웠지만 현재 팔달문 상권은 초라하다.
팔달문 로터리 인근 상가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밤낮없이 사람들이 북적거렸던 ‘경기 3대 상권’이자 수원의 중심상권이었지만 이제는 활기를 잃은 지 오래됐다. 점포 다섯 곳 가운데 한곳이 비어있을 정도로 한산하다. 지역 상권을 살리기 위해선 혁신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팔달문 인근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이 있고 오래된 전통시장들이 있다. 교통의 중심지이도 하다. 그럼에도 쇠퇴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수원시와 경기도의 적극적인 관심을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