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66)] 홍문숙 '취우翠雨 -명옥헌에서'
취우翠雨
- 명옥헌에서
홍 문 숙
먹구름에 갇힌 꽃잎들이
붉음을 얻기 위해 견뎠을 시간
빗방울에 씻어내 나뭇가지에 걸어둬도
배롱나무는 흔들림 없이
꽃을 피울 수 있었을까
부딪는 빗방울의 따가움으로 깨어나는 어리석음
붉음을 얻은 후에야 비로소 알았을 터
꽃 아래 흩어진 꽃잎들은
어느 생을 찾아가느라
바닥에 거처를 두고 뉘었을까
생은 혼자가 아니라며
꽃대가 다른 꽃대에 기댄 채 흔들림을 견딘다
어머니가 나를 기대며 버텨온 것처럼
꽃향내 품어져 붉어진 것은
나를 일으켜 세운 물소리 같다
올곧은 길을 걷게 하려고
빗방울 속에 몸 적시며
어머니 뿌리를 넓힌
명옥헌의 배롱나무 환하다
명옥헌은 선조 때의 문신 오희도가 은거했던 망재(忘齋) 인근에 그의 아들 오이정이 조성한 별서이다. 정자 뒤에 있는 샘물이 울타리를 따라 졸졸 흐르는 소리가 옥구슬이 부딪치고 흩어지는 소리 같다고 하여 헌호를 명옥헌(鳴玉軒)이라 하였다고 한다. 시인은 그 옥구슬이 우는 소리를 듣고자 함이었을까. 시인의 발걸음이 전남 담양에 소재한 명옥헌으로 향하였다. 시인은 명옥헌에서 또 다른 소리를 듣는다. 취우가 부딪는 소리이다. 빗방울이 나뭇잎에서 지면서 만들어내는 비취 구슬이 내는 영롱한 소리이다.
‘먹구름에 갇힌 꽃잎들이/붉음을 얻기 위해 견뎠을 시간/빗방울에 씻어내 나뭇가지에 걸어둬도/배롱나무는 흔들림 없이 /꽃을 피울 수 있었을까’
만해도 ‘알 수 없어요’에서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라고 물었다. 당연히 절대자의 상호(相好)이다. 명옥헌 연못 주변으로는 해마다 늦여름 한철 배롱나무가 장관을 이룬다. 그 붉은 꽃은 미처 피지 않았다. 먹구름에 갇힌 꽃잎들이다.
드디어 꽃이 피었다. 그런데 장하게도 장대비가 내리신다.
‘부딪는 빗방울의 따가움으로 깨어나는 어리석음/붉음을 얻은 후에야 비로소 알았을 터/꽃 아래 흩어진 꽃잎들은/어느 생을 찾아가느라/바닥에 거처를 두고 뉘었을까’
한여름 빗방울이 제법 거세다. 부딪는 따가움으로 비로소 미망(迷妄)의 구름을 조금이나마 씻어낸다. 꽃이 피면 지는 게 섭리이다. ‘꽃 아래 흩어진 꽃잎들’은 누구의 생을 따라가려 바닥에 거처를 정했을까.
하지만 ‘생은 혼자가 아니’다. ‘꽃대가 다른 꽃대에 기댄 채 흔들림을 견딘’ 것처럼 이제는 물 건너 피안으로 떠나신 어머니가 노년에는 ‘나를 기대’ ‘버텨온 것’이셨다. 하지만 정작 기댔던 것은 스스로였음을 ‘나를 일으켜 세운 물소리’였다며 깨닫는다. 그 어머니는 자식에게 ‘올곧은 길을 걷게 하려고/빗방울 속에 몸 적시며’ ‘뿌리를 넓힌’ 배롱나무이셨다.
위의 시는 홍문숙 시인이 지난 6월에 상재한 시집 『소쇄원에 이는 천년 바람』에 들어있는 「취우」의 전문이다. 이 시의 무대가 되는 명옥헌과 소쇄원도 모두 담양에 있다. 시인은 수도 없이 담양을 찾아 그곳에서 면앙정 송순을 비롯한 고인(古人)들의 뜻을 되새긴다. 이 시집은 천년의 세월을 푸르게 불던 바람이 엮은 씨줄과 날줄의 기록을 더듬어 시인이 가슴으로 엮은 새로운 형태의 문화유산 답사기라 할 수 있다. 굳이 명옥헌이 아니라도 좋다. 이제 머잖아 또 배롱나무에 붉은 꽃잎들이 피어날 것이다. 그 꽃이 질 때면 더위도 한풀 꺾인다.
홍 문 숙 시인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소쇄원에 이는 천년 바람』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