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67)] 허정예 '껍데기'
껍데기
허 정 예
제부도 갯벌 위에 앉아 있는
빈 소라껍데기
어머니다
이 세상 누구도, 그 속에서
양수물 뒤집어쓰고
생명을 부지하지 않았는가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바람막 노릇만 하다가 쓸쓸히 비틀려
제 몸 발려 죽은 거미마냥
바람 되어 하늘을 가른다
목숨 부지하고
품 안에 품어
주름 주머니 될 때까지
가슴으로 끌어안는 지고의 사랑
분신의 꽃무늬 그리다
버려진 껍데기
이런저런 이유로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 번잡하기만 할 때 그냥 휙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네 녹록지 않은 사람살이에 마음 내키는 대로 다녀오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 그저 만만하게 바람을 쐬러 가는 곳 중 한 곳이 제부도이다. 보름사리일 때는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일이 만만치 않지만 운 좋게 조수 간만의 차이가 적은 조금때이면 어렵지 않게 걸어서 건너갈 수 있는 섬.
시인이 무슨 연유로 제부도엘 갔는지는 분명치 않다. 또 중요한 일도 아니다. 그곳에 갔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섬에 들러서 그 섬의 주위를 돈다. 그곳에서 발견한 ‘제부도 갯벌 위에 앉아 있는/빈 소라껍데기//어머니다’
시는 논리가 아니라 직관이다. 그렇기에 시인은 그 껍데기에서 어머니를 본다. 그렇게 시작한 시적 사유는 생명의 근원으로 확산된다. ‘이 세상 누구도, 그 속에서/양수물 뒤집어쓰고/생명을 부지하지 않았는가’ 그렇다. 지금은 빈 껍데기이지만 그것은 생명을 담았던 넉넉한 세계였다. 이어 사유는 어머니의 생애로 옮겨간다.
그 어머니는 누구였던가.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랬듯이/바람막 노릇만 하다가 쓸쓸히 비틀려/제 몸 발려 죽은 거미마냥/바람 되어 하늘을 가른다’ 어머니가 그랬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랬다. 자식들의 바람막 역할로 평생을 살다가 쓸쓸히 비틀려 말랐다. ‘바람막’은 ‘바람벽’의 충청도 사투리이다. 우리네 가옥에서 방이나 칸살의 옆을 둘러막은 둘레의 벽으로 바깥의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인지 ‘바람벽’이라는 표준어보다 ‘바람막’이라는 말이 그 뜻이 더 분명하게 다가올 때가 많다. 이 시도 그렇다. 문밖은 풍설이 몰아치는 험한 세상이다. 그 바람을 당신이 막고 방 안의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더 아늑하면 된다는 믿음이 어머니의 신산한 일생을 버티시게 하였다. 그 사랑은 ‘목숨 부지하고/품 안에 품어/주름 주머니 될 때까지/가슴으로 끌어안는 지고의 사랑’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 주름 주머니 같은 껍데기만 남으셨다.
‘분신의 꽃무늬 그리다/버려진 껍데기’
자식이란 무엇인가. 분신이다. 그 분신을 정성스레 그리다가 버려진 소라껍데기의 등위로 나선무늬가 꽃무늬처럼 선연하다.
허 정 예 시인
문파문학 신인상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수원문인협회 수원시인협회 회원
시집『시의 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