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일보=이민정 기자] 수원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이자 3.1운동 때 민족대표 48인 중의 한명으로 이름을 올린 김세환 선생을 조명하는 책이 출판됐다.
박환 고려학술문화재단 이사장(전 수원대 사학과 교수)은 광복 80주년과 김세환 순국 80주년을 맞아 ‘동방 김세환 평전’(선인 펴냄, 232쪽, 1만8000원)을 펴냈다.
김세환 선생에 대한 최초의 연구서이기도 한 이 책엔 제적부, 토지대장, 선교본부의 기록, 대한제국관보, 조선총독부관보 등 광범위한 자료들을 수록, 선생 뿐 아니라 당시의 민족운동 상황을 살펴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한국 독립운동사를 전공한 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필동 임면수 평전’ ‘신흥무관학교’ ‘만주독립전쟁’ ‘러시아 한인민족운동사’ 등을 펴낸 저자는 “3.1운동의 중심인물들 가운데 일부는 식민지 치하에서 변절의 길을 걷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세환 선생은 끝까지 조국의 해방을 위해 투쟁했으며 민립대학 설립운동을 펼치고 진보세력과 적절한 타협을 통해 신간회운동에도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수원지역뿐만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자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진정한 교육자였지만 지역에서도 잊혀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개인적으로 평전을 펴내게 됐다고 책 머리말을 통해 밝혔다.
김세환 선생은 1899년 11월 18일 당시 수원군 수원면 남수리 242번지(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792)에서 출생하고 생활했다.
현재 팔달문 가빈커피숍과 가빈갤러리가 있는 곳이다. 이후 한성외국어학교와 일본 중앙대학에서 공부했고 수원으로 돌아와 수원상업강습소(지금의 수원중·고등학교)와 삼일여학교(지금의 매향중·고등학교)에 재직하며 학생들에게 독립·민족의식을 주입시켰다.
3·1운동 때는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이 되어 동지 규합을 위해 수원을 중심으로 충청지역까지 내려가 모집을 담당했다.
김노적(1895~1969) 선생 등과 수원군 만세 운동을 일으켰으며, 경성에서 진행된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 360일간의 옥고를 치렀다. 재판장이 “이후에도 조선의 독립을 위해 계속 운동할 것인가?”하고 물었을 때, 조금의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명료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석방된 이후에도 여전히 독립을 위한 사회·문화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1927년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연합조직이었던 신간회에 참여했고 이듬해인 1928년 8월 19일 개최된 임시대회에서 신간회 수원지회장으로 선출됐다. 또 외곽조직인 수원체육회를 조직해 회장을 역임하는 등 지속적으로 민족주의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광복을 맞은 지 한 달 후인 1945년 9월 16일 세상을 떠났다.
1963년엔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수원을 빛낸 인물을 알리기 위해 수원시청 1층 로비에 마련한 수원시 명예의 전당에도 임면수·김향화·이선경 애국지사와 함께 헌액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