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136)] ‘일오천(逸烏川)의 그 삼각주여’
지난 주 초에 군위 인각사(麟角寺)에 들러 국사전(國師殿)에서 보각국존(普覺國尊) 원경충조(圓經冲照) 일연(一然)[1206-1289] 스님을 배알하였다. 주지되어 있듯 스님은 당대의 대덕이었을 뿐만 아니라 현존 문헌으로 단군신화를 최초로 기록하기도 한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저술한 문화사가였고, 대상 인물의 생애나 사건을 소재로 7언 절구 찬시(讚詩) 48편을 지어 첨부한 감흥의 시인이기도 하다. 국사전 벽면에 스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도 후손도 향유할 수 없는 저 신라시대의 향가 14수 중 한 수도 소개되어 있어 지나칠 수 없었다. 유명한 「찬기파랑가(讚耆婆郎歌)」. “열어젖히자/벗어나는 달이/흰구름 좇아 떠간 자리에/백사장 펼친 물가에/기파랑의 모습이 겹쳐져라//일오천 자갈벌/낭의 지니시오던/마음의 끝을 좇노라//아, 잣나무 가지가 높아/눈이라도 못 덮을 화랑이여”. 1천3백여 년 전 이 땅의 시(가사)를 오랜만에 다시 읽는 감회가 없지 않았고, 어두운 밤에 홀연히 자태를 드러내고 ‘흰 구름’을 지향하는 ‘달’로 표상된 ‘기파랑’을 화자의 호흡을 따라 찬미하는 정서에 젖었다.
역자를 제시하지 않았는데, 역대 학자들의 국역을 기초로 절충하며 인각사를 중창하는 분들의 의견도 수합해선지 굳이 밝히지 않은 것 같다. 상기 국역이 이 시의 주제와 정서를 잘 전달한다고 인정하면서 서정시 번역은 어감 어조 리듬을 위시하여 그 뜻과 세부 함축 등등에 걸쳐 개인마다 작고 큰 차이가 있을 수 있기에 필자는 이 번역에다 양주동 등 역대 학자들의 국역을 참고하고 의역을 좀 가미해 다음과 같이 조정해보았다.
咽嗚爾處米(인명이처미) 먹구름 열어젖히고
露曉邪隠月羅理(노효사은월라리) 모습 드러내는 달이
白雲音逐于浮去隠安攴下(백운음축우부거은안복하) 흰구름 좇아 밤하늘에 둥실 떠 가네
沙是八陵隠汀理也中(사시팔릉은정리야중) 모래 큰 언덕 모래 섬 가운데서
耆郞矣皃史是史藪邪(기랑의모사시사수사) 기파랑의 모습은 그 푸른 풀숲이었지
逸烏川理叱磧惡希(일오천리질적악희) 일오천(逸烏川)의 그 삼각주여
郞也持以攴如賜烏隠(낭야지이복여사오은) 낭이 지니시오는
心未際叱肹逐内良齊(심미제질힐축내량제) 그 마음의 끝을 좇노라
阿耶栢史叱枝次髙攴好(아야백사질지차고복호) 아아 측백나무 우듬지 높고 아름다워라
雪是毛冬乃乎尸花判也(설시모동내호시화판야) 아무리 눈 내려도 덮이지 않는 푸른 화랑이여
- 「찬기파랑가(讚耆婆郎歌)」/충담(忠談)[신라 경덕왕(재위 742-765) 시대 스님]
신라의 말을 그 뜻을 한자로 번역하거나 신라 말과 같은 음을 가진 한자로 표기하는 이두(吏讀)로 기록한 이 시. 8세기 신라 그때 그대로 현대 국어로 번역하기는 불가능하다. 선학들의 노고에 의지하고 문맥을 고려하여 번역해보았으나 오히려 원래 취지를 왜곡한 망발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구도 정확한 번역이라고 자신할 수 없고 후속 번역을 초래하기 위해서도 그 시도는 가능하다.
10구체 1행에서 ‘먹구름’이 생략됐다고 여기며 제시하였는데, 2행 ‘모습 드러내는 달’의 그 동향 때문이다. 즉 1-2행을 '달'이 먹구름에 가려 있다가 먹구름을 헤치고 나타나는 정황으로 보았다. 4행 ‘모래 큰 언덕 모래 섬’은 원문 ‘沙是八陵’과 ‘汀’의 직역이며, 6행 ‘일오천(逸烏川)의 그 삼각주’의 ‘삼각주’는 원문 ‘磧’의 직역인데, 4행 ‘沙是八陵’과 ‘汀’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으로 여긴 나머지 번역이다. ‘磧’은 ‘냇가나 강가의 돌이 많은 곳’, 즉 자갈벌이기도 하며, ‘물속에 모래가 쌓여 물위로 솟은 섬’, 즉 ‘삼각주’이기도 하다. 중언되지만 삼각주는 냇가나 강가에 있는 자갈벌이나 모래사장(모래톱)과 조건과 환경이 다르다. 그리고 그 ‘磧’에 있는 5행의 ‘藪’(덤불)를 ‘풀숲’이라고 번역하였다.[삼각주에 풀이 나면 그곳을 ‘풀등’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외 필자의 번역은 기존의 번역과 다르지 않은 그 답습이다.
이 시의 화자를 시인이 창조한 허구 인물로 보지 말고 시인 충담(忠談) 스님으로 보아야 하겠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기이(紀異)》 「경덕왕·충담사·표훈대덕」에 다음과 같은 주석 성격의 관련 사연이 서술되어 있다.
“3월 3일(765년)에 왕[경덕왕]이 귀정문(歸正門)의 누 위에 나가서 좌우의 측근에게 말하기를, “누가 길거리에서 위의(威儀) 있는 승려 한 사람을 데려올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다. … 다시 한 승려가 납의(衲衣)를 입고 앵통(櫻筒)을 지고서[또는 삼태기를 졌다고도 한다] 남쪽에서 왔다. 왕이 그를 보고 기뻐하면서 누 위로 맞아서 그 통 속을 보니, 다구(茶具)가 들어 있을 뿐이었다. … 왕이 말하기를, “짐이 일찍이 듣기로는 스님이 기파랑을 찬양한 사뇌가(詞腦歌)가 그 뜻이 매우 높다고 하던데, 과연 그러하오?”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그러하옵니다”고 하니, 왕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짐을 위해 백성을 편안히 다스릴 노래를 지어주시오”라고 하니, 승려가 즉시 칙명을 받들어 노래를 지어 바쳤다. 왕이 그를 아름답게 여겨 왕사(王師)로 봉하니, 승려는 두 번 절하고 굳이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경덕왕은 귀정문에 행차하기 전에 충담을 알고 있었고, 충담이 ‘기파랑을 찬양한 사뇌가’를 지었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다. 경덕왕과 충담의 문답에서 우리는 「찬기파랑가」의 화자가 충담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이 말미에 「찬기파랑가」가 제시되고 있다.
1, 2, 3행은 작중 실제 정경 묘사이면서도 ‘달’은 ‘기파랑’의, ‘먹구름’은 저열하면서도 끈덕진 세속 장애들의, ‘흰구름’은 당위와 이상의 환유이며, 세 이미지는 선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즉각 우리의 주목을 끌고 관련 연상을 촉진한다. 특히 ‘달’의 행보 추이는 주인공의 기품을 직절하게 인지하게 한다.
4행 ‘모래 큰 언덕 모래 섬’과 6행 ‘일오천(逸烏川)의 그 삼각주’는 다시 말해 같은 장소이며, 화자가 ‘기파랑’과 함께하며 그의 훌륭한 언행에 감명 받았던 대표 공간이다. 그렇게 반복하는 이유는 그 공간을 구체화하여 강조하고, 동시에 ‘일오천의 그 삼각주’ 그 자체의 이미지와 함축을 2행 ‘달’에 이어 ‘기파랑’을 형상화하는 은유로도 활용하는 의도에서가 아닌가 추정할 수 있다. 즉 '삼각주’는 앞에서 살폈듯, ‘물속에 모래가 쌓여 물위로 솟은 섬’이며, ‘풀숲’도 포함하고 있는데, 그 생성에서 오랜 고난과 숱한 역경을 극복하고 성실하게 융기한 큰 인격과 역량의 비유로도 가능하고, 바람직하다.[삼각주에서 풀이 무성하게 난 풀숲, 즉 ‘풀등’을 ‘먼 항로의 지친 목숨들’이 ‘다시 살아갈 힘’을 주는 ‘따뜻한’ 성역(聖域)으로 보고, 자신도 긴 항해를 하는 고단한 몸이었는데, 이웃의 같은 삶을 깊이 동정하고 그만 자신을 그들에게 휴식처로 바친 헌신의 존재로 비유한 현대시가 있다. 「풀등이라는 이름」/구향순]
그리하여 이어지는 7-8행 ‘낭이 지니시오는/그 마음의 끝을 좇노라’라는 화자의 ‘기파랑’ 추종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하겠다. 이 시행에서 화자는 ‘기파랑’의 ‘마음’이 아니라 ‘마음의 끝’을 따른다고 하였는데,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표현이며 ‘기파랑’ 존경을 재차 내포한다. 한편 이와 달리 ‘마음의 끝’은 9행 ‘측백나무 가지’와 관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높고 아름다운 ‘측백나무의 우듬지’는 고귀한 인격과 역량을 아슬아슬하게 표상한다. 누구도 오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결구 10행에서 보듯, ‘눈’이 아무리 ‘내려도’, 그야말로 대 폭설이어도 눈에 ‘덮이지 않는’ 우듬지, 그러니까 그 푸른 우듬지는 바로 ‘기파랑’의 격조이자 기상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하필이면 여기서 ‘측백나무’가 기파랑을 비유하는 또 하나의 이미지로 선택된 배경으로 『논어』 《자한(子罕)」》 편의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모진 추위가 닥친 연후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가장 나중에 자신이 기진해서야 시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를 환기해볼 수 있다.
참고로, 기파랑과 이 시를 유사(遺事)로 전승하게 한 경덕왕의 귀정문 행차는 왕권 강화의 취지에서 계획된 거동이었고, 충담 스님은 『논어』를 독파한 유학 지식인이기도 했다. 이때 충담 스님이 경문왕에게 지어올린 「안민가(安民歌)」에, “아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할지면 나라 안이 태평하리이다”란 구절이 있다. 『논어』 《안연(顔淵)》 편의 “君君臣臣父父子子(정치가 제대로 시행되려면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을 자식다워야 합니다.)”가 그 출전이다.[충담 스님은 특히 왕이 왕다워야 한다고 강조]
그런 충담 스님의 안목에서, 먹구름을 찢고 나타나는 밤하늘의 밝고 밝은 ‘달’, ‘모래 큰 언덕 모래 섬’ 장관(壯觀)인 ‘일오천의 삼각주’, 절개와 의리의 ‘측백나무’와 그 어떤 사정에서도 정체성을 유지하는 우듬지로 비유된 ‘기파랑’은 그야말로 화랑다운 화랑이 아닐 수 없다. 세속오계(世俗五戒)에도 투철했을 ‘기파랑’을 기리는 충담 스님의 향념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상 깊으며 그 밀도까지 우리로 하여금 감지하게 한다. 그래서인가. 췌언이지만 오늘 더욱, 자신이 소속한 사회를 정화하며 맑고 힘차게 인도하는 ‘기파랑’과 같은 화랑이 그립다. ‘아야(阿耶)’, 어찌 충담 스님과 일연 스님만이 그런 인물을 바라고 기리겠는가. 이 시대 국회의원을 화랑으로 여긴다면 그저 야유를 일게 하는 시대착오 무리인건가. 지난 제80주년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여야 대표가 악수조차 하지 않고 나란히 앉아 서로 인격에 연관시켜 기피하고 혐오하는 모습을 유권자 시민들에게 보였다. 두 사람의 문제만이 아니며, 아무리 부박한 정쟁의 나날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래도 기괴하다. 새삼스럽게 성찰을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