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68)] 곽 예 '된장잠자리의 일기'
된장잠자리의 일기
곽 예
오늘도 파리 모기 각다귀를
200마리 넘게 잡아먹었다.
눈이 왜 그렇게 크냐?
맨드라미한테 놀림을 받았다.
맨드라미 붉은빛을
두 눈에 담아
잠시 신호등이 되었다.
눈이 왜 그렇게 볼록하냐?
사철나무에게 놀림을 받았다.
사철나무 푸른빛을
두 눈에 담아
잠시 신호등이 되었다.
고물상 가는 할머니 따라가서
저울 위 종이박스에 나도 올라갔다
으라차차 두 눈에 힘을 주었다.
긴긴 여름날의 아침을 그렇게 시작하곤 했다. 눈을 뜨자마자 뒤란 한쪽 벽에 세워두었던 잠자리채를 들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포충망이 있을 리가 없다. 잠자리채라야 가는 장대 끝에 둥글게 철사로 테를 만들어 붙인 게 고작이었다. 거기에 거미줄을 걷어 두면 잠자리를 잡는 데는 그만이다. 아침 댓바람에 서둘러 그걸 들고 나서는 까닭은 다른 친구들이 걷어가기 전에 거미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들로 냇가로 잠자리를 잡으러 다니는 게 여름날의 아주 재미진 놀이였다.
위의 시는 지난해 『수원 詩人』에 곽예 시인이 발표한 「된장잠자리의 일기」 전문이다. 추억의 실타래를 그 옛날 동심의 세계로 풀어나간다. 일기를 쓴 시적 화자를 사람이 아닌 된장잠자리로 설정했다. 시는 된장잠자리가 ‘오늘도 파리 모기 각다귀를/200마리 넘게 잡아먹었다.’로 시작한다. 파리 모기 각다귀는 여름철 귀찮은 날벌레들이다.
된장잠자리의 선행이 이어진다. 맨드라미는 여름 한철 우물가나 우리네 토담 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꽃대 꼭대기에 위풍당당한 장닭의 볏을 닮은 붉은 꽃이 핀다. 그 꽃이 ‘눈이 왜 그렇게 크냐?’며 된장잠자리를 놀렸다. 하지만 그 놀림에 토라지지 않고 오히려 ‘맨드라미 붉은빛을/두 눈에 담아/잠시 신호등이 되었다.’고 했다. 당연히 건너가지 말라는 신호로 반짝이는 빨간 불일 게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철나무가 ‘눈이 왜 그렇게 볼록하냐?’며 놀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또 ‘사철나무 푸른빛을/두 눈에 담아/잠시 신호등이 되었다.’ 조심해서 건너가라는 파란불이다.
이렇게 된장잠자리는 빨간불과 파란불을 번갈아 밝히는 건널목의 신호등이 된다. 다 까닭이 있었다. 폐지를 줍는 일로 생계에 도움을 삼는 할머니를 위함이다. 할머니가 힘들게 폐지를 싣고 가는 도로가 위험천만이다. 건너갈 때와 기다려야 할 때를 제대로 가려야 그나마 안전하다. ‘고물상 가는 할머니 따라가서/저울 위 종이박스에 나도 올라갔다’ 여기서 비로소 된장잠자리가 일기 속 화자인 ‘나’로 등장한다. 하루 진종일 종이박스를 줍는다 해도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몇 푼 안 된다. 당연히 모아 온 폐지의 무게로 환산하여 돈을 받는다. 그것을 아는 ‘나’는 한 마리 잠자리가 무게가 나가면 얼마나 나간다고 그 박스 위에 올라가 무게를 더하고자 한다.
‘으라차차 두 눈에 힘을 주었다.’
왠지 눈물이 난다.
한여름 뙤약볕에 할머니의 신산(辛酸)한 하루의 일을 맨드라미와 사철나무 그리고 일기를 쓴 된장잠자리까지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엮은 시인의 시선. 참으로 고와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곽 예 시인
『한국시학』으로 등단
시집 『북간도』
동시조집『초롱이 오빠』
산문집 『곽예의 사진일기』, 『곽예의 독서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