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69)] 이분희 '옥수수의 기억'

김준기 수원시인협회 회장

 

옥수수의 기억

                   이 분 희

 

시장 어귀 리어카 가판대

뿌옇게 김을 뿜는 옥수수

입 안 가득 고인 침이 기억을 더듬는다

 

전등 주위 나방들 춤사위 격정에 이르면

마당가 멍석 위 가족들 이야기 소리

골목이 들썩인다

 

누렁이도 한자리 차지하고

별똥별도 모깃불 매운 연기에

찡그리며 산 너머로 달아나는 여름밤

 

어머니는 양푼 가득 옥수수를 내오시고

벌통 앞 손전등을 비추시던 아버지

놀란 막내 위해 귀신 이야기를 말리실 즈음

귀신보다 더 무서운 박벌 나방

멍석 위로 던져진다

 

가지런히 알알이 박힌 옥수수

이제 하모니카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련하다. 그립다. 그래서 가슴이 먹먹하다.

 

시장을 들르는 일은 다반사로 있는 일상의 일이다. 그 어귀에 있는 노점상에서 옥수수를 판다. ‘뿌옇게 김을 뿜는 옥수수’는 식욕을 돋운다. 그 ‘입 안 가득 고인 침이 ’ 느닷없이 기억을 어린 시절의 고향집 마당으로 이끈다.

한여름 밤의 더위를 식힐 겸 답답한 방보다는 탁 트인 마당에 멍석을 깔거나 평상을 놓고 온 식구가 모여 앉는다. 딱히 누구네랄 것도 없다. 집집이 대동소이하게 이야기꽃을 피우니 골목 안이 다 시끄러울 정도이다.

그 추억의 여름밤 풍경이 시에서 서정을 가득 담고 평화롭게 펼쳐진다. ‘누렁이도 한자리 차지하고/별똥별도 모깃불 매운 연기에/찡그리며 산 너머로 달아나는 여름밤’ 요즘처럼 유별나게 강아지의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다. 털이 검으면 검둥이고 누러면 누렁이였다. 식구들 이야기에 참견을 하고 싶었음인지 누렁이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귀를 쫑긋하고 있다. 밤하늘과 맞닿은 능선 너머 어슴푸레 이내가 깔린 자리로 살별이 진다. 그 별이 지는 까닭이 모깃불 매운 연기 때문이란다. 시인이기에 가능한 발상이다.

어머니가 ‘양푼 가득 옥수수를 내오’셨다. 형제들의 손이 바쁘게 앞을 다투어 양푼으로 향한다. 그런 한밤중에는 귀신 이야기보다 재미진 게 없다. 특히 어린 동생을 놀리기 위해 언니들은 온갖 표정을 지어가면 열을 올린다. 놀란 막내는 울음보가 터지기 직전이다. 밤중까지도 벌통 앞에서 손전등을 비추시던 아버지가 ‘이제 그만들 하거라.’하며 웃음 가득한 얼굴로 언니들을 말린다. 그때다. 귀신 이야기보다 더 화들짝 모두를 놀래키는 것은 때맞춰 느닷없이 멍석 위로 떨어지는 박벌 나방이다.

놀람도 잠시이다. 짧아도 밤은 밤이다. 밤이 깊어질수록 식구들의 정도 깊어진다. 어머니가 쪄 내오신 옥수수 덕분이다. 그 ‘가지런히 알알이 박힌 옥수수’가 이제는 없다. 시장 가판대에서 파는 옥수수는 그 옥수수가 아니다. 시인은 ‘이제 하모니카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옥수수는 단순한 먹거리로 그치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하모니카 소리를 냈다. 그런데 그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는다. 시간만 흘러가는 게 아닌가 보다. 그 공간도 흘러 어디론가 사라졌나 보다. 여름밤 고향 집 마당이 그립고 갑자기 가슴이 먹먹하다.

 

 

이분희 시인

『문예비전』으로 등단

경기시인협회, 수원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