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기관에서 근무하다가 오랜만에 학교로 돌아갔더니 살짝 두려웠다. 기회 있을 때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 저렇게 해야 한다… 했으니 당연했을 것이다. 그러나 교직원 회의 모습을 지켜보고는 금세 ‘안심’하게 되었다. 다행히(?) 오래전에 비해 전혀 달라지지 않아서 두려워할 것 하나도 없다 싶었다. 잘하고 있는 걸 더 잘해야 하는 입장이 두렵지 잘못하는 걸 보고 뭐가 두렵겠는가.
아득하긴 했다. 사회는 온갖 변화·발전을 거듭하는데 학교행정은 여전히 각종 지시·전달에 이어 교장 훈시로 마무리하던 20세기의 그 서글픈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면 변화의 당위성 이야기에 앞서 우선 숨 막히는 느낌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야 회의(會議)를 하게 될까? 회의가 뭔지 모르진 않을 것이어서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서 모이고 있으니, 이러지 말고 중요하고 필요한 일을 의논·결정하는 회의를 하자”고 해보았다. 당황했을 것이다. 담당 부장교사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지금 회의를 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교육부·교육청·교육지원청의 문서는 안내이거나 간혹 지시사항이어서 우리가 일일이 분석하고 의논하고 결정할 일은 거의 없으니까 그대로 열람·처리하는 것이 당연하고, 정작 해야 할 일은 이 학교 교육을 위해, 이 학교 학생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의논하고 결정하는 일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이 설득력을 발휘한 것 같지 않았다.
더 설명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국가 교육과정을 구현하는 것이고, 전국 모든 학교의 여건과 사정이 서로 다 달라서 우리 학교 나름의 구체화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우리 학교 교육과정이다. 거기에 교육적 환경의 변화는 어제와 오늘이 달라서 시시각각 우리의 의사결정을 요구한다.
어느 선생님이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계획을 세워 교장의 결재를 받아 추진하는 것은 결국 교장의 일방적 지시를 받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담당 선생님 주관으로 학년 단위나 학교 단위 등 크고 작은 회의를 거쳐 그 일을 결정하게 되면 교장은 그 모든 결정 사항에 대해 전체적인 책임을 지고 추진하게 된다. 그러므로 회의란 의사결정이다.
이런! 그 부장교사는 이 설명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 같았다. 의사결정을 다수결로 속단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의 교직원 회의는 걸핏하면 손을 들게 하는 우스운 모습을 보였다.
2학기가 저물어가던 어느 날, 교문에 걸 불조심 현수막 표어 공모에 뽑힌 학생에게 상을 주자고 했더니 담당 교사는 그걸 지시하면 그만이지 왜 나에게 요청하느냐고 했다. 그럴 줄 알고 있었지만 그럼 누가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는지, 교장이라고 맘대로 돈 쓰고 상을 주고 하면 독단적이라고 손가락질하면서 그러느냐고 반문했다. 그 교사는 교사들이 일일이 그런 행사에 쓸 수 있는 예산을 마련하고 그러진 않았다는 사실을 얘기했고, 그 대화가 오고갔다는 소문이 온 학교에 퍼졌다.
그 즈음에 다음해 예산을 편성하게 되었다. 각 학년·부서별 회의를 거쳐 부장교사들과 행정실장 연석회의에서 결정하기로 했다. 이 기회에 의사결정을 경험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교장은 회의 결과가 우리 학교 예산편성지침에 적합한지만 보고 책임을 다하겠다고 행정실장에게 약속했다. 그날의 회의는 서로 예산을 많이 확보하려는 난상토론이 되어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결국 이튿날 속개된 회의에서 마무리되었다.
그때부터 교직원회의는 모습을 갖추었다. 어느 날, 시상 문제로 대화를 나누었던 그 교사에게 또 다른 제안을 했더니 그는 그 제안을 잘 검토해 보겠다고 해서 함께 웃으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학교는 쉽게 변하진 않는다. 정년퇴임을 한 그해 봄, 어느 교사가 당장 전했다. 우리는 또 ‘회의’를 하지 않게 되었다고. 교사들이 결정한 일을 책임질 수 없다는 교장과 함께하고 있다고.
십여 년 후에 연락하기도 했다. 그는 장학사로 전직해서 일하며 비로소 그때 교장이 교직원들에게 왜 그렇게 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학교에서 회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어떤 곳에서 회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