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비 오는 날 다산과 두보의 시를 읽다

김우영 논설실장 / 시인
비와 관련된 두보와 다산의 시가 들어있는 근당 양택동 선생의 그림. (김우영 소장)
비와 관련된 두보와 다산의 시가 들어있는 근당 양택동 선생의 그림. (김우영 소장)

끔찍한 무더위가 계속된 여름이었다. 입추 처서가 모두 지났음에도 영상 30도를 훨씬 웃도는 폭염이 계속됐다.

그 바람에 나의 중요한 일과인 산책도 약식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본래는 팔달산을 따라 화성을 한 바퀴 돌거나, 수원천을 타고 올라가 광교산 버스종점까지 걷는 길이 주된 산책로다. 그런데 몸이 익을 정도로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길을 걸을 수 없어서 화성의 동쪽 성 그늘, 팔달문 시장 안 상가 골목을 산책로로 삼아 돌아다녔다.

지난 8월 5일부터 9일까지 다녀왔던 중국 평요고성과 운강석굴 답사여행에서 동행한 화성연구회 한 회원이 내게 말했다.

“김 선생도 이제 옛날 체력이 아닌가 봐?” 고개를 끄덕여줬다.

나이 들었으니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서운하지 않다.

오늘은 무더위를 씻어주는 반가운 비가 내린다. 이 비 그치면 더위도 그치려나? 열대야가 끝나 밤잠이라도 제대로 잘 수 있으려나?

방에 걸려있는 족자 그림에 들어있는 시구(詩句)가 오늘따라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이 그림은 우리나라 서예계의 대가인 근당 양택동 선생께서 주셨다. 근당 선생의 글씨도 당연히 마음에 들지만 최근 천착하고 있는 그림들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빼앗을 만큼 모두 걸작들이다.

화성연구회 유성재 이사는 한때 봉담에서 음식점을 운영한 적이 있었다. 그 식당 안에는 유 이사와 친분이 유난히 두터운 근당 선생의 그림 몇 점이 걸려 있었다.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유 이사는 “음식은 공짜로 줄 수 있어도 저를 생각하며 붓을 들어 그림을 그려주신 근당 형님의 작품은 절대 줄 수 없다”며 손을 내젓곤 했다.

사람인지라 나도 탐심이 생겼다.

그 욕심이 표정에 과하게 드러났는지 근당 선생은 어느 날 이 작품과 함께 나의 시 ‘장안문 달빛에 막혀 집에 가지 못했다’를 써서 보내주셨다.

이 작품의 오른쪽에는 ‘쇠사불능휴(衰謝不能休)’ ‘수뢰저서관(愁賴著書寬)’이란 시 구절이 있다.

‘쇠사불능휴’는 중국 시인 두보의 시 ‘강 위에서(江上)’ 한 구절이다.

시들어 떨어질 정도로 늙었지만 쉴 수가 없다는 뜻이다.

가을 날 하루 종일 강 위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시인의 쓸쓸한 심경을 엿볼 수 있다.

‘수뢰저서관’은 조선 후기의 대학자 다산 정약용의 시 ‘장맛비(久雨)’에 들어 있다.

이 작품 역시 가을 장맛비가 내리는 날, 유배지인 강진에서 지었다.

 

<장맛비(久雨)>

궁벽한 삶 인사치레도 없으니 (궁거한인사 窮居罕人事)

매일 의관도 폐하게 되는구나. (항일폐의관 恒日廢衣冠)

썩은 지붕에선 노래기가 떨어지고 (패옥향랑추 敗屋香娘墜)

묵은 밭두렁에는 팥꽃이 남아 있네. (황휴부비잔 荒畦腐婢殘)

잔병이 많아 잠도 줄어드니 (수인다병감 睡因多病減)

글 쓰는 일로 시름을 달랠 따름일세. (수뢰저서관 愁賴著書寬)

긴 비라고 괴로워하지 않느니 (구우하수고 久雨何須苦)

맑은 날에도 스스로 탄식하거늘. (청시야자탄 晴時也自歎)

 

유배 중인데다가 병까지 겹친 다산이 가을장마를 보면서 우울해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다산은 수원과의 인연이 깊다. 수원화성의 기본 계획 제안서인 ‘성설(城說)’을 지었고 거중기 등도 설계했다.

이에 이의동엔 수원 다산중학교, 화서동엔 화서다산도서관이 있고, 몇 년 전엔 다산학자 박석무 이사장이 이끄는 다산연구소도 수원에 둥지를 틀었다.

다산은 “온 세상이 썩은 지 오래다(天下腐已久). 부패하다 못해 썩어 문드러졌다(腐爛).”고 개탄했다.

그런데 그 말은 지금 세상에서도 낯설지 않다. 있는 자, 가진 자들의 일그러진 행태가 보도될 때마다 다산이 생각난다.

그래서 나는 둔필이나마 글 쓰는 일로 시름을 달랠 따름이다. (수뢰저서관 愁賴著書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