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138)] ‘사랑이란 그런 것 생각이야 나겠지만’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김소월(1902-1934)의 시 「진달래꽃」에서 화자는 현재 연인과 사랑을 향유하고 있으면서, 연인의 변심과 이별을 예정하고, 그때 지닐 자신의 심경을 상대에게 읊는다. “ … 영변에 약산(藥山)/진달래꽃/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 나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우리는 화자의 이 심정을 너무 동정하다가 그만 우문우답(愚問愚答)을 감행할 수 있었다. 이후 과연 마침내 둘은 헤어지는 미래를 맞고야 말았는지, 그렇다면 또 그렇게 이별하고야 말았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아마 그랬을 것 같다고. 

 하지만 「진달래꽃」은 어디까지나 가정의 시이고, 가정으로 끝나는 시이다. 오히려 현재 사랑의 지속을 바라고 바라는 심정을 그 이상으로 병렬 부각한다. 현재의 충일한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 그런 가정을 설정하고 자신과 상대에게 그렇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의 지속을 낙관하기 어려운 사정이나 조건이 있거나, 애매하나마 상대의 언행에서 뭔가 수상한 기미가 있는 듯해서. 어쨌든 변심 또한 인지상정(人之常情) 아니냐고 냉소할 사람들이 많은 세상. 그래서 차라리 ‘죽어도’ 부디 그런 이별이 야기되지 말기를 화자는 기원하면서, 만약 발생한다면,  그 변심을 극도로 경멸하며 자신을 아무래도 그렇게 통제해야 하지 않겠나 다짐하는 결기도 미리 언급하고 있다. 

 김소월의 다음 시도 우리가 삶에서 도저히 떼어낼 수 없으며, 갖가지 사연이 얽힐 남녀의 사랑과 애증을 거의 같은 취지와 태도로 다루고 있다.       

       

먼 후일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앉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후일 그 때엔 “잊었노라”

         - 「먼 후일」/김소월

 

 제목 ‘먼 후일’부터 그러하듯, 이 시도 가정 상황을 노래한다. 화자는 현재의 사랑에 도취되거나 몰두하지 않고, 그래도 좋으련만, 개연성이 없지 않다고 해도 꼭 있다고 할 수 없는 이별을 미래 상황으로 설정한다. 나아가 현재 사랑의 지속을 의심하며 굳이 그 고통을 감내하면서 상대에게 해줄 말, 그 각오까지 피력한다.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믿기지 앉아서 잊었노라.” 

 수세의 변명 같지만 따지고 보면 변명이 아니라 비난이다. 부드럽고 차분한 어조지만 그 어떤 쏘아붙이는 말보다 차갑게 격렬하기도 하다. 「진달래꽃」과 다르지 않은 양상. 사랑을 지속하지 않거나 못하고 떠나갈, 결국 변심할 가능성이 있는 연인에게, 당해 사정이 무엇인지 생략되어 있지만 화자는 사랑의 신의를 지킬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진달래꽃」과 「먼 후일」은 있을 수 있는 미래의 이별을 설정하며 그 예방 의지를  짐짓 의도의 기반으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만약 그대와의 이별이 닥친다면 전자는, 매달리거나 애원하거나 하지 않고 사랑한 만큼 아무튼 겉으로는 미련 없이 수용하긴 하겠다는 반어 의지의 피력으로 경고하고 있고, 후자는 미래에 그대와 이별하게 된다면 그대를 오래 그리워하며 기다릴 것인데, 강산이 변할 만큼 세월이 흘러도 그대가 약속한 대로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 ‘먼 후일’ 그때라야 비로소 그대를 잊겠다, 도저히 찾겠다는 약속이 “믿기지 앉아서”. 그러니까 미련을 수치로 여기도록 돌아오겠다던 언약을 늦추고 늦춰 드디어 나를 불신하게 한다면, 나는 그 이후 그대가 나를 찾아오더라도 그대를 용서할 수 없다. 그러니 그렇게 늦지 말고 늦지 않게 돌아오라...

 두 시는 그래도 서로 결이 많이 다른 가운데, 현재의 사랑을 그대로 지속하고자 하는 화자의 기대와 희원을 부각해, 아무리 절실해도 있는 그대로 읊는 경우보다 훨씬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 이미 우리도 우리의 사랑이 그저 좋기만 해 낙관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 것인가. 두 시는 미래를 알 수 없는 인생, 현재의 상태나 의지대로 일관 전개하기 어려운 인생의 차원에서, 그 효용이 아주 큰 예방주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두 시를 화자의 입장만이 아니라 화자의 대상 인물 입장에서도 감상해본다면 더 좋을 것이다. 

 두 시와 관련되어 있어 보이는 노래를 며칠 전 큰 비 오시는 밤에 오랜만에 들었다. 정귀문(1942-2020) 작사, 장욱조(1947-  ) 작곡. 나훈아, 정윤선 등이 부른 「먼 훗날」.

 

행여나 날 찾아 왔다가

못 보고 가더라도

옛정에 매이지 말고

말없이 돌아가 주오

사랑이란 그런 것 생각이야 나겠지만

먼 훗날 그 때는

이 사람도 떠난 후일 테니까

 

행여나 날 찾아 왔다가

못 보고 가더라도

추억에 머물지 말고 

그대로 돌아가 주오

사랑이란 그런 것 생각이야 나겠지만

먼 훗날 그 때는

이 사람도 떠난 후일 테니까

 

 이 노래의 제목 「먼 훗날」은 김소월의 「먼 후일」과 같을 뿐만 아니라, 1행 첫 어절 ‘행여나’에서 대번 알 수 있듯, 미래의 가정을 전제로 한다. ‘옛정’과 ‘추억’을 잊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헤어진 연인이 세월이 흐른 ‘먼 훗날’에도 혹시 자신을 잊지 못하고 찾아와, 자신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말없이’, 그리고 ‘추억에 머물지 말고’ ‘돌아가’ 달라고 화자는 거듭 부탁한다. 그 어조는 단순한 배려의 그것이 아니라, 애원에 가깝게 느껴진다. 하마터면 흐느낄 자신의  슬픔을 간신히 절제하면서. 

 즉 화자는 옛 연인에게 ‘옛정에 매이지 말고’라고 당부하지만 자신은 정작 그 ‘옛정에 매’여 있는 듯하고, 이는 화자에게 ‘행여나’가 아니라 늘 그러한 듯하다. 자신도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가슴 한 구석에 숨어 이어지는 철쇄 없는 구속 같은 미련. 화자는 자신이 그러하듯 연인도 어디선가 실은 그렇게 지내고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과연 연인도 그렇다고 확신하려고 화자는 ‘옛 정에 매’이는 상태를 ‘사랑이란 그런 것 생각이야 나겠지만’이라고 반복하는 것이 아닐까. 

 이 모든 추정은 이 가사에서 반복되는 두 행 결미, ‘먼 훗날 그 때는/이 사람도 떠난 후일 테니까’를 단서로 한다. 우리는 ‘먼 훗날 그 때는/이 사람도 떠난 후일 테니까’를 ‘먼 훗날 그 때는/이 사람도 죽은 후일 테니까’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죽으면 생이 끝나기에, ‘옛정’과 ‘추억’도 끝나기에, ‘말없이’, 그리고 ‘추억에 머물지 말고’ ‘돌아가’ 달라, 허무에 반항하듯 그렇게 모질게 당부하는데, 재회를 우리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차라리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의 뜻도 있다. 그리고 이 함축에 또 함축이 있다고 여겨진다. 혹시 내가 죽기 전에 그대가 내게 돌아와 우리 해후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옛정에 매’여 여러 대화를 나누고, 또 멋 적게나마 ‘추억에 머물’기도 하면서...

 하지만 한편, 화자도 우리도 잘 알고 있다. 그럴 수 없다는 현실을. 그리고 이 노래는 제대로 이루지 못한 지난 사랑을 위무하는 석별의 제의, 사랑의 초혼가(招魂歌)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