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70)] 김순덕 '자화 雌花'

김준기 수원시인협회 회장

 

자화 雌花

                       김 순 덕

처음부터

떠도는 구름처럼

살 것은 아니었지

 

백리 아니, 천리 길

벼랑 끝에 서도

차마

날을 수 없어

바라만 보는 먼 거리

 

오늘, 가슴 패이는

아픔이 되었는가.

 

자화(雌花). 자성화(自性花)라고도 한다. 수술은 없고 암술만 있는 꽃의 이름이다. 시적 화자의 정체는 분명치 않다. 시인일 수도 있고 시인이 바라보는 그 누군가를 대변함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 호기심이 이 시의 제목이 지니는 매력이다.

아무튼

‘처음부터/떠도는 구름처럼/살 것은 아니었지’ 여기서 떠돎은 당연히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정한 거처가 있어도 떠도는 정신은 수도 없이 많다. 누구인들 떠돌기만 하는 삶을 원하였겠는가. 하지만 행운유수일 수밖에 없다. 

그것도 홀로. 

선택이 아닌 숙명이었다. 그것이 자화이다. 

간절히 그리는 이가 있다. 구체적 누구일 수도 있고 혹은 추구하는 경지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백리 아니, 천리 길/벼랑 끝에 서도/차마/날을 수 없어/바라만 보는 먼 거리’이다. 벼랑 끝에 섰다. 날아감부터는 선택이지만 날아갈 수 없으면 그 선택 또한 숙명이다. 그래서 차마 닿을 수가 없다. 그다음 이어지는 아픔은 시인의 몫이고 이 시에 공감하는 이의 몫이다.

어쩔 수 없이 자화는 ‘가슴 패이는/아픔이’다. 누구나 그런 아픔 하나 숨기고 살지 않는가 싶다. 꼬장꼬장하기만 하고 못생긴 자존심으로 ‘이것은 통속적이다.’라며 거리를 두었던 무엇인가가 가슴을 두드리는 날이 있다. 그럴 때 많이 아프다. 박인환도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라고 하지 않았는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면 아픔이 아니다. 차마 날아갈 수 없어 그저 바라만 보는 아픔이 아무리 통속적이라고 해도 그게 그리움이다.

 

 

김순덕 시인

1993년 월간『순수문학』으로 등단

시집 『너는 해바라기 나는 바람』 외 다수  

한국시학상 외 다수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