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71)] 이규봉 '메밀꽃 지다'

김준기 수원시인협회 회장

 

메밀꽃 지다

               이  규  봉

 

꽃이 져버린 봉평 메밀밭은

잡초 반 메밀 반이다

 

계절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우산 끝으로 흘러내리고

메밀밭 입구엔

헛 물레방아만 돈다

가을 해바라기꽃 한 송이와 잡초가 춤을 추는

물레방앗집 초가지붕

 

메밀꽃이 지고 나니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의 사랑도

막이 내렸다

봉평 장날도 파장이다

 

내 안의 열꽃은

아직 사그러들지 않았는데

 

이규봉 시인이 2013년 『한국시학』 겨울호에 발표한 「메밀꽃 지다」의 전문이다. 언어의 사전적 의미로만 따라가면 그냥 가을 무렵의 봉평 메밀밭 일대에서 느낀 서정일 수도 있다. 시는 여백의 문학이다. 행간과 연 사이의 여백에 숨어 있는 날카로운 비판이 이 시의 묘미라 하겠다.

메밀꽃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별러서 갔을 것이다. 봉평은 그렇게 쉽사리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이미 ‘꽃이 져버린 봉평 메밀밭’이다. 아쉬운 마음도 잠시이다. 둘러보니 ‘잡초 반 메밀 반이다’ 꽃을 보는 일은 덤으로 얻는 호사이고 꽃이 졌으면 머지않아 메밀을 가을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았지 않은가. 그러나 꽃이 지고 관광객의 발길이 뜸해지니 정작 소중한 일을 잊고 잡초가 무성하다.

가을이 이젠 새삼 깊어 간다. 반갑지 않은 가을비가 내리는 하늘은 무상한 순환을 이야기한다. 따라서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겸허해지는 시간에 ‘메밀밭 입구엔/헛 물레방아만 돈다’ 1연과 같이 시인의 마음은 착잡하다. 봉평의 메밀밭이 명소가 된 것은 가산(可山)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과 맞물림이 결코 적다 할 수 없다. 메밀밭 입구에 소설 속의 가장 에로틱한 공간이라 할 수 있는 물레방앗간을 재현해 놓았다. 물레방아는 돌지만 그곳에서 정작 방아를 찧을 일은 없다. 그저 ‘가을 해바라기꽃 한 송이와 잡초가 춤을 추는/물레방앗집 초가지붕’일 뿐이다.

사람들이 마음 씀이 그런 것인가. 시인은 ‘메밀꽃이 지고 나니/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의 사랑도/막이 내렸다/봉평 장날도 파장이다’라고 했다. 하필이면 여름밤이었다. 그것도 달이 환한. 게다가 물레방아 안이었다. 그렇게 생애 단 한 번 뿐이었던 기인한 인연이 맺어준 애틋한 사랑도 한 철 장사가 지나고 나니 막을 내리고 그야말로 파장이다.

‘내 안의 열꽃은/아직 사그러들지 않았는데’ 그래서 더 아쉽다. 더 무슨 첨언이 필요하랴. 붙이면 사족이 된다.

 

이 규 봉 시인

2006년 『한국문인』으로 등단

시집 『울림소리』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