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72)] 김도희 '달에게'

김준기 수원시인협회 회장

달에게

                                       김 도 희

 

팔월 열나흘 밤

차례 준비를 끝낸 기름내 진동하는 부엌 창문으로

달이 빼꼼히 들여다본다

반가워 창문을 여니

어느새 감나무 가지 위로 성큼 올라갔다

 

엊그제만 해도

무딘 칼로 서툴게 썰어 놓은 생선 살점 같던 달이

둥그런 얼굴 눈부시게 환해졌다

 

산 넘고 물 건너 구불구불 오솔길 지나

울퉁불퉁 험한 고개를 수없이 넘어

네온이 휘황한 도시를 뒤로 하고

이 외지고 허름한 곳에 나를 찾아준 달이 고마워

말을 건네 본다

 

조금씩 잊혀지듯 아프게 한쪽이 떨어져 나가도

때가 되면

지금처럼 또 다시 환하게 가득 차오를 터이니

너무 서러워 말라고

달도 나도 환하게 웃는다

 

오늘이 음력으로는 칠월 스무엿새이니 아직 팔월도 오지 않았다. 그러함에도 한가위를 기다리는 성급함 때문일까. 명절을 손꼽아 기다릴 나이도 아닌데. 이 시가 눈에 들어와 다시 읽었다.

시의 시간적 배경은 ‘팔월 열나흘 밤’이다. 만월에 못지않은 달이 ‘차례 준비를 끝낸 기름내 진동하는 부엌 창문’으로 휘영청 떠올라 부엌 안을 ‘빼꼼히 들여다본다’ 달이 지나가는 하늘 위의 길에는 거침이 없다. 그러니 ‘어느새 감나무 가지 위로 성큼 올라’가 앉았다. 무심코 달을 본다. 그다음 비유가 재미있고 찰지다. 이전의 달을 ‘무딘 칼로 서툴게 썰어 놓은 생선 살점 같던 달’이라 했다. 만월이 아니라고 해서 상현의 현(絃)에 굴곡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성에 차지는 않았기에 그리 비유했는지도 모르겠다. 

달빛이 시인의 상념을 이끈다. ‘산 넘고 물 건너 구불구불 오솔길 지나/울퉁불퉁 험한 고개를 수없이 넘’었다고 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외지고 허름한 곳’이라 했으니 우리네 마음속에 통상으로 들어있는 근원적 외로움을 미처 다 떨구지는 못한 곳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어서 ‘나를 찾아준 달이 고’맙다고 했다. 

그렇다. 달은 모든 세상 만인의 가슴을 두루 밝힌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이라 하지 않았나. 하나의 달이 천 줄기의 강을 비춘다. 그저 필부필부(匹夫匹婦)에 지나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어느 줄기인가 강물에 실려 떠가는 존재이다. 그 길을 밝혀주는 달이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아프다. 아무리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라 했지만 이우는 달은 ‘조금씩 잊혀지듯 아프게 한쪽이 떨어져 나’간다고 했다. 그러나 이내 ‘다시 환하게 가득 차오를 터이니/너무 서러워 말라고/달도 나도 환하게 웃는다’로 시의 흐름을 마무리한다. 그렇게 사는 게 아닐까. 찼다가 이울고 이어 다시 차고. 입가에 번지던 웃음이 눈자위를 적시기도 하고 그 눈물이 또 다시 웃음으로 피어나기도 하고. 어차피 희로애락도 무상으로 번갈아 옴을 나도 조금은 알 나이가 된 것도 같다. 아무튼 추석이 스무날도 채 남지 않았다. 올 추석에는 누구와 또 더불어 달을 맞이할지 모르지만 아주 작은 욕심 한 옹큼쯤은 허락받고 싶다.

 

김도희 시인

2010년 『스토리문학』으로 등단

한국경기시인협회 수원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