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73)] 고은영 '모과향, 이유 있음에'

김준기 수원시인협회 회장

 

모과향, 이유 있음에

                                      고  은  영

 

예정된 직감처럼

미모의 운명이 비껴 간 자리

일색이었다면 그 진한 향내를

계율같은 깊이를

다 가질 수 있을까 현자만이

아는 속내를 문이 있어도

문을 닫아버린

삶은 비교 되어서도

비교 될 수도 없는 것

존재하는 것들은

다 고만고만한 이유 있다하네

누구도 한 가지만이라도

균등하게 부여받은 복

모과를 누가 싫어하던가

그 거죽만 보고

 

고은영 시인이 2010년 『한국시학』 봄호에 발표한 「모과향, 이유 있음에」의 전문이다. 

우리 속담에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라는 게 있다. 못난 사람 하나가 함께 있는 친구나 동료까지 망신시키는 경우를 일컫는 관용어이다. 과일이 지천으로 쌓이는 가을 한나절 과일가게를 가보면 그 모양과 때깔만 보아도 손이 절로 가는 과일이 수북하다. 한 입 깨어물면 새콤하면서도 달디 단 제철 과일의 과육이 입 안 가득 담긴다. 그런데 과일전 한편 자리를 차지한 모과는 아닌 게 아니라 못생겼다. 울퉁불퉁한 표면에 골이 파진 자리는 거뭇거뭇한 상처까지, 영 손이 가지 않는다. 뿐인가. 그냥 입 안에 넣으면 시큼하고 떫은 게 텁텁하기까지 하다. 

시인도 ‘예정된 직감처럼/미모의 운명이 비껴 간 자리’라고 했다. 타고난 생김새가 그렇다. 그러나 모과는 다른 과일이 전혀 같지 못한 정체성이 있다. 그 향이다. 그래서 시의 제목도 「모과향, 이유 있음에」이다. 모과의 존재 이유는 그 향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일색이었다면 그 진한 향내를/계율같은 깊이를/다 가질 수 있을까 현자만이/아는’이라고 했다. 겉모습이 천하일색이라고 해도 모과처럼 진한 향내를 가질 수 없고 또 그 향은 현자만이 알 수 있는 계율과도 같은 깊이를 지녔음이다. 

아름다운 외모가 가치 없다는 말은 아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예쁜 것이 어찌 나쁘랴. 문제는 거죽뿐일 수도 있는 외양에 현혹되어 내면의 깊이를 보지 못함이다. 그리고 비교를 하고 한쪽으로 쏠리는 가름을 하는 게 잘못이다. 그래봤자 다 갑남을녀이고 필부필부인 ‘고만고만’한 삶이 ‘비교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모과가 과일전에 나오기까지는 아직은 좀 이르다. 나는 매해 모과를 얼마씩은 꼭 산다. 끊어야지, 끊어야지 다짐하면서도 못 끊는 담배와 반복되는 강의로 목을 혹사하기에 기왕이면 모과차를 마시기 위함이다. 그리고 모과청을 담기 전에 몇 개는 꼭 빼놓는다. 바구니에 담아 내 방의 책상 위에 놓으면 늦은 가을 그리고 초겨울 한철에 글을 쓸 때 그만한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누가 모과를 못생겼다 하는가. 충분히 이유가 있고 타당한 항변이다.

 

고은영 시인

『문예비전』으로 등단

경기시인상 수상

시집 『학여울 가는 길』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