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을 맞은 지 한 달 후인 1945년 9월 16일, 3.1운동을 사전에 기획·실행한 핵심인사로서 ‘민족대표 48인’ 중의 한사람이자, 수원지역에서 선도적으로 독립운동을 펼치고 후세 교육에 앞장선 선구자가 세상을 떠났다. 김세환 선생이었다.
선생은 서울 한성외국어학교와 일본 중앙대학에서 공부한 엘리트였지만 고향 수원으로 돌아와 수원상업강습소(지금의 수원중·고등학교)와 삼일여학교(지금의 매향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애국·애족 의식화에 전념했다. 3·1운동 때는 수원을 중심으로 충청지역까지 내려가 동지를 모집했다. 수원의 독립만세운동을 선도했고 서울에서 진행된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됐다. 심한 고문을 당해 몸이 쇠한 상태에서 옥고를 치렀다.
석방 후에도 독립을 위한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1928년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통합 운동으로 만들어진 신간회의 수원지회 회장으로 선출됐으며 수원체육회를 조직해 회장을 역임하는 등 사회·문화운동을 계속했다. 세상을 떠난 후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그러나 지역에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사)화성연구회 조성진 이사와 그의 친구 윤의영·고영익 씨 등이 나섰다. 조 이사가 운영하는 가빈갤러리와 카페가 당시 수원군 수원면 남수리 242번지(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792)로서 선생이 태어나고 생활했다는 인연 때문이었다. 조 이사는 사비를 들여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전시회와 역사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 후 가빈갤러리 앞 인도엔 ‘김세환 집터’라는 안내판도 설치돼 있다.
이번엔 수원시도 나섰다. 수원박물관이 광복 80주년과 김세환 선생 서거 80주기를 맞아 26일 오후 2시 박물관 다목적실에서 ‘민족 대표 김세환을 통해 본 수원의 교육과 사회운동’을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한 것이다.
조성운 동국대학교 역사교과서연구소 연구원이 ‘김세환과 수원 지역의 민족운동’이란 주제로 김세환 선생의 생애와 독립운동에 헌신한 삶을 재조명한 기조 발표를 했다.
이어 이주희 동국대학교 역사교과서 연구원이 ‘3·1운동 이후 수원화성학원의 사회운동과 격문 사건’을 발표, 당시 수원 지역의 사회운동을 이끌었던 인물들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정명희 국가보훈부 학예연구사는 ‘일제하 수원 지역의 근대 교육을 통한 민족의식의 성장’을 발표했다. 수원의 근대 교육 현황과 이를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뿌리내리기 위한 노력을 소개했다.
현재 수원박물관에선 지난 8월 15일부터 12월 7일까지 특별기획전 ‘다시 만난 민족대표 김세환’이 열리고 있다. 당시 수원 지역의 구심점으로 활동했던 김세환 선생의 위대한 생애를 만날 수 있다.
많은 시민들의 관람을 바란다. 애국지사들의 치열했던 항거와 이타적인 삶 덕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