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76)] 김우영 '그대들, 비록 그 자리 초대받지 못하였으나'
그대들, 비록 그 자리 초대받지 못하였으나
- 그날 수원화성에서의 잔치, 낙성연(落成宴)
김 우 영
윤복쇠, 김대노미, 김개불, 김쇠고치, 지악발, 이자근노미…
그대들 비록 그때 그 자리 초대받지 못했으나
저 성벽과 누각, 수원천에 비치는 달빛
만천명월(萬川明月)의 주인은 그대들일세
동서남북 그리고 여기
오방기 흔드는 바람도 그대들임을 내 잘 알지
그대들 원력(願力)으로 다진 터에
눈물 수천 줄기 모여 흐르던 내에
저 좀 보아
굳은 맹세처럼 성이 솟았네
이 자리에 없으나
나의 마음 속 큰 술잔을 받으시게
이어인노미, 김육손, 김노랭이, 황시월쇠, 정춘득…
기세 푸르던 장용영 군사들
춤추고 노래하던 여령들과
장안문 밖 새술막거리 주모
그대들도 오늘밤은 불취무귀(不醉無歸)
비록 그날 잔치에 초대받지 못하였으나
김오십둥이, 강허무쇠, 최말불, 김순노미, 박작은여출
1796년으로부터 227년이 흐른 2023년
오늘에서야
그대들에게 내미는
아직도 여여(如如)한 이 마음 한잔 받아주시게
위의 시는 김우영 시인이 2023년 《한국시학》 가을호에 발표한 「그대들, 비록 그때 그 자리 초대받지 못하였으나」의 전문이다. 역사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에 대한 시인의 성찰이 오롯이 드러난다. 주지하다시피 수원화성은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이 장헌세자에 대한 지극한 효심으로 원침을 수원 화산으로 옮긴 후 1774년(정조18년)에 시작하여 1796년(정조 20년) 9월에 완공한 성이다. 동년 10월 16일에 그 완공을 축하하는 잔치 낙성연에 당시 공사 감독관과 기술자부터 일용 노동자, 일반 백성까지 참여하여 성대히 열렸다.
그러나 성역에 참여한 장인(匠人)은 1821명이 모두 모두 잔치 자리에 앉을 수 있지는 않았다. 시인은 ‘윤복쇠, 김대노미, 김개불, 김쇠고치, 지악발, 이자근노미…’ 등 그 장인들의 이름을 불러 ‘그대들 비록 그때 그 자리 초대받지 못했으나/저 성벽과 누각, 수원천에 비치는 달빛/만천명월(萬川明月)의 주인은 그대들일세’라며 의미를 부여한다. 문득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시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이라는 시 중, ‘만리장성이 완공된 날 밤에 미장이들은/어디로 갔던가?’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대왕의 애민 정신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 많은 장인을 다 잔치에 부르기에는 분명 물리적 공간의 제약이 있었을 것이다. 시인은 미처 잔치 자리에 불리지 못한 그들에게 ‘나의 마음 속 큰 술잔을 받으시게’라며 ‘이어인노미, 김육손, 김노랭이, 황시월쇠, 정춘득…/기세 푸르던 장용영 군사들/춤추고 노래하던 여령들과/장안문 밖 새술막거리 주모’까지 불러 ‘그대들도 오늘밤은 불취무귀(不醉無歸)’, ‘그대들에게 내미는/아직도 여여(如如)한 이 마음 한잔 받아주시게’라고 위무한다.
과거에 지난 일이 역사소(歷史素)는 될 수 있으나 그 자체 모두가 역사가 될 수는 없다. 사가들이 지닌 역사관이라는 체로 걸러냈을 때 비로소 역사상(歷史像)이 세워진다. 그러나 그 체와 상(像)이 역사가의 전유물이어서는 안 된다. 건강한 시민의 의식으로 함께 걸러내고 세워나가야 한다.
김오십둥이, 강허무쇠, 최말불, 김순노미, 박작은여출
거의 무명에 가까운 그 이름들을 받드는 일이 지난해부터 화성연구회 주최로 펼쳐지고 있다. 올해도 수원화성 축성 장인들의 명패를 봉안하는 문화제가 오는 토요일(10월 18일) 팔달사에서 열린다고 한다. 하여 생각난 시이다. 아울러 시간이 되시는 분들의 참여를 권한다.
김 우 영 시인
1978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수원시 문화상, 한국시학대상 등 다수 수상
시집 『당신이 외치는 문』
『겨울 수영리에서』
『부석사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