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하늘도 감응했다! '화성축성 장인명패 봉안문화제'

김우영 논설실장 / 시인
'2025년 수원화성 축성장인 명패 봉안문화제'가 열린 팔달사.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2025년 수원화성 축성장인 명패 봉안문화제'가 열린 팔달사.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조바심에 밤늦게까지 잠을 못 이루고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새벽 3시에 다시 눈이 떠졌다.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빗소리가 들린다. 새벽 5시, 또 눈이 떠졌다. 그리고 다시는 잠이 오지 않는다. 비는 아직도 추적추적 내린다. 아침 7시, 그때까지도 비는 오락가락이다.

그러나 한 시간 후 8시가 되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오, 하느님, 천지신명이시여, 감사합니다.

2025년 10월 18일, 이날은 사단법인 화성연구회가 주최하고 팔달사가 공동주관하며 경기도·경기관광공사·수원시·수원문화원·수원일보가 후원하는 '2025년 수원화성 축성장인 명패 봉안문화제'가 열린 날이었다.

때 아닌 가을장마로 비가 내리는 날이 계속되고 있어서 주최·주관 측의 걱정이 컸다. 행사 뒤풀이 자리에서 들으니 그날 밤과 새벽, 회원들 대부분이 나처럼 잠을 못 이루고 노심초사하면서 비가 그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고 한다. 그 여러 회원들의 염원이 하늘에 닿았는지 행사 내내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가 지속됐다. 오 고마워라.

성신사에서 열린 고유제.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성신사에서 열린 고유제.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올해 수원화성 축성장인 명패 봉안문화제는 18일 낮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성신사, 화령전, 우화관 앞마당, 팔달사에서 열렸다. 성신사 고유제에 이어 화령전 참배, 낙성연, 천도재가 이어졌다.

장인명패 봉안문화제에는 염태영·김준혁 국회의원과 김봉식 수원문화원장, 김갑동 수원일보 대표이사, 오영균 수원문화재단 대표이사, 오현규 수원예총 회장, 김준기 수원시인협회 회장, 오덕만 전 한국국가유산지킴이연합회 회장 등 내빈도 함께해 뜻 깊은 행사를 지켜봤다.

최호운 화성연구회 이사장(한국국가유산지킴이연합회 회장)은 “오늘 행사는 유, 불, 선이 화합하는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는 무형유산으로 수원특례 시민이 직접 참여해 수원화성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인식할 수 있으며, 자긍심을 갖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신사에서 고유제를 봉행한 후, 우화관 앞에서 낙성연 잔치, 팔달사에서 기념식에 이어 장인들을 위한 바라춤 공연과 천도재를 올렸다.

참여자 100명이 장인 명패를 들고 취타대와 함께 성신사-화서문-화령전, 우화관-행궁 앞-팔달사까지 펼친 거리 행진은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명패를 들고 화서공원 억새밭길을 따라 내려오는 시민들.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명패를 들고 화서공원 억새밭길을 따라 내려오는 시민들.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이번 행사에서 나는 화성성역총리대신이자 좌의정인 채제공에게 정조대왕의 어명을 전하는 도승지 역을 맡았다.

“어명이오~” “화성성역총리대신인 채제공 좌상께서는 주상전하의 어지를 받으시오!”라는 간단한 대사였지만 사전에 몇 번을 반복 연습, 그런대로 “멋있다” “잘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총리대신 좌의정 채제공 역을 맡은 이는 내 2년 선배 이광호 형이다. 한때 연극배우도 했던 그가 멋들어지게 낭독한 낙성연 교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원화성은 1796년 9월 10일 완공하였노라. 나라가 태평하고, 풍년이 들어 온갖 물건이 무르익고 있다. 바로 상하가 함께 즐거워하는 상하동락(上下同樂)이요. 태평에 춤추며 두 동이 술로 만수무강을 빎이 마땅하도다. 조선 400여 년 역사에 처음 있는 큰 공사를 2년 만에 이처럼 이루었다. 궁실이 거대하고 화려하니 오늘 낙성 잔치를 어찌 성대하게 열지 아니 하리오? 오늘 낙성 잔치를 베풀어 화성 성역에 참여한 모든 장인과 백성들 모두는 풍류를 즐기고 불취무귀(不醉無歸) 하기를 바라노라”

우화관 옆 마당에서 열린 낙성연 한마당.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우화관 옆 마당에서 열린 낙성연 한마당.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정조대왕·혜경궁과 함께 화성행궁 앞을 지나는 명패 행렬.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정조대왕·혜경궁과 함께 화성행궁 앞을 지나는 명패 행렬.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1794년 1월 축성을 시작, 1796년 9월 완공된 화성 축성 공역에는 장인 1821명과 관료 372명, 모군 887명이 참여했다.

지난번 수원일보 사설(16일자, ‘수원화성 축성 장인 명패 봉안문화제’ 수원시가 적극 지원해야)에서도 언급했지만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고 화성행궁도 복원돼 지금은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하지만 축성의 주인공인 장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없었다.

나는 ‘성을 쌓을 돌을 캐내고 다듬은 석수, 4대문과 방화수류정 등을 지은 목수를 비롯, 미장이, 와벽장이, 대장장이, 개와장이, 화공, 톱장이 등을 기억해주는 후인들은 별로 없었다’고 사설을 통해 지적했다.

헌화를 하는 내빈들. 왼쪽부터 김갑동 수원일보 대표이사, 최호운 화성연구회 이사장, 신소영 수원시 문화예술과장, 김봉식 수원문화원장.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헌화를 하는 내빈들. 왼쪽부터 김갑동 수원일보 대표이사, 최호운 화성연구회 이사장, 신소영 수원시 문화예술과장, 김봉식 수원문화원장.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이에 지난해부터 (사)화성연구회가 나서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행사를 열었다. 팔달사에서 나온 은행나무를 입수한 김충영 씨가 장인들의 명패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화성연구회 전임 이사장이기도 하다.

지난해는 22명의 명패를 만들어 봉안했지만 이번엔 100명으로 늘렸다. 낙성연도 추가됐다. 행사 규모가 대폭 확대 됐으니 예산과 인원도 그만큼 더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황대호 경기도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의 도움이 컸다. 모자라는 예산의 대부분은 최호운 화성연구회 이사장 사비가 투입됐다. 회원들도 십시일반 주머니를 열었다. 이채휴 우리옷 대표도 큰 도움을 주었다.

앞에서 소개한 수원일보 사설에는 ‘이 뜻 깊은 행사가 매년 계속되기 위해서는 수원시가 적극 나서야 한다. 아울러 관내 기업과 지역사회도 힘을 모아주면 좋겠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명패 봉안소도 필요하다. 앞으로 2000여명 장인의 명패가 더 들어가야 하는데 현재 팔달사 용화각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행사가 끝난 뒤 함께 한 화성연구회 회원들.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행사가 끝난 뒤 함께 한 화성연구회 회원들.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원래는 수원시가 적극 앞장서야하는 일이다. 이 일을 순수 민간단체인 (사)화성연구회에만 떠 맡겨서는 안 된다.

앞으로 사업규모가 더 커질텐데 회원들 주머니를 터는 것만으론 지속이 어렵다.

수원시와 기업, 지역사회 도움이 절실하다. ‘수원을 수원답게’ 근본을 찾아가는 사업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