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 문학잡설 144] ‘한 사람이 취하면 한 사람은 덜 취하네’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그대 괴로워하는 자여

괴로움이 우리의 것이다

그대 슬퍼하는 자여

슬픔이 우리의 것이다

그러니 그대 더 무엇을 바라랴

함께 가는 이 길 위에서   

    - 「괴로움은 그대의 것」/우영창

 

 그대의 ‘괴로움은 그대의 것’만이 아니라 나의 것이기도 하다는, 화자가 한 친구에게 우정 관련 자신의 심사를 토로해 위로하는 진술들. 어디서 들었던 덕담이라며 경이원지(敬而遠之)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일로 슬퍼하거나 괴로워하다가 홀로 의연히 그 극복에 나선다면 그런다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만약 그 와중에 한 친구가 위처럼 우리를 위로해준다면 우리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암흑의 바위를 뚫고 나오는 빛이 아니겠는가.  

 즐거움과 기쁨뿐만 아니라 ‘괴로움’과 ‘슬픔’도 ‘우리의 것’이면서 ‘인생의 ‘길’ 그 자체이기에, ‘우리’는 그 ‘길’을 오히려 긍정해야 한다는 함축도 새삼 위로가 된다. 중요한 것은 나아가 그 ‘길’을 ‘우리’는 ‘함께 가’야 하는데, 이미 ‘우리’는 ‘함께 가’고 있다는 확인과 그 환기. 그리고 이어지는 ‘그러니 그대 더 무엇을 바라랴’... 

 실제로 이 시의 최종 진술에 해당하는 ‘그러니 그대 더 무엇을 바라랴’가 혹 독단이나 독선으로도 들려 부담될 수 있겠지만, 이 메시지는 이 시의 ‘그대’에게만이 아니라 우리도 언젠가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어떤 친구에게 화자처럼 피력했던 위로라는 사실을 불현듯 떠올리거나 그러리라며, ‘그대’가 자신의 마음을 재건하는 중심으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같은 시집에 실려 있는 다음 시는 위 시 이후에 쓰인 연계 작품의 하나로 보이며, 위 시에서 생략된 우정 관련 구체 국면이 출현되어 있어 그 보충으로 읽으면 좋을 것이다.

 

친구가 찾아오니

하던 일이 바쁘지 않네

친구가 찾아오니

그는 한가한 사람이 되어

술을 마시러 가네

외상 술집엔 술이 가득하고 

한 사람이 취하면 한 사람은 덜 취하네

이 술집 저 술집 헤매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네

다 그런 거지 뭐

그는 세상만사 잊고 잠이 드네

      - 「친구」

 

 아무리 바빠도 친구가 찾아오면 문득 ‘한가한 사람이 되어’ ‘술이 가득’한 ‘외상 술집’ 순례를 마다하지 않다가 겨우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그’. 화자는 그저 관찰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이 상황은 아무래도, 감정을 잘 절제한 공자가 자신의 심정 고조를 부지불식 용인했을 몇 안 되는 언급의 하나인 “벗이 멀리서 나를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랴(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 『논어』 「학이(學而)」)를 상기하게 한다. 이 고아한 선행 말씀에 화자가 감명 받아 신조로 삼아 실천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알게 모르게 그 유구한 맥락이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우정(友情)은 시공을 초월한 보편 정서이고, 우리 삶에서 결코 그 부재를 감내할 수 없는 가치이다. 부모, 남매, 연인, 부부의 애정만으로는 이른 바 세속 시장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우리가 아닌가. 더욱이 친구 관계의 덕목과 우정은 언제나 신(信)이 기초. 새삼스럽지만 현인들이 일찍부터 인간의 삶에서 그 관계와 인격과 또 사업과 지향을 상호 고양하는 소중한 가치로 중시하며 오륜(五倫)의 하나로 제시했고, 오늘날 다른 조목은 그저 외면되거나 조건이 붙거나 범위가 축소되거나 하며 빛이 바랬지만, ‘붕우유신(朋友有信)’은 그대로 건재하고 있는 지표이다.  

 우리는 자신의 관련 상태도 짐짓 헤아리다가 결국, ‘다 그런 거지 뭐’라고 이전처럼 얼버무리는 남편을 아예 외면하는 ‘아내’를 동정하면서도, ‘아내’와의 반목과 냉전에 구애되지 않고 ‘세상만사 잊고 잠’자는 ‘그’가 부러울 것이다. 아니, 우정의 여운에 유감없이 자못 흡족해져서 ‘세상만사 잊고 잠’자는 면모가.         

 다음 시도 역시 같은 시인이 같은 시집에 실은 친구와의 우정을 다룬 작품인데, 그 종국에 해당되어 읽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대 무덤에 가지 않는다

그곳엔 뼈와 머리카락

그리고 손톱 발톱뿐

기일이 와도

그대 무덤에 가지 않는다

어디 가나

어느 시간이나

그대 날 놓아 주지 않으므로

그대 증오하며

나 그대 무덤에 가지 않는다

    - 「미망인」

 

 ‘미망인’까지 자처한 화자의 단호하지만 미련이 더 강력한 어조. 반어가 아닌 듯하면서도 반어일 수 있는 진술들. 마침내 우리가 사라진 이 세상에서 우리의 친구가 이 시의 화자처럼 ‘어디 가나/어느 시간이나/그대 날 놓아 주지 않’는다며 우리를 그리워한다면. 

 도저한 우정에 부담이 크고 미안해서 수용하기 어려울 테지만, 그런데 우리가 화자처럼 그럴 수 있다면 우리도 그러고 싶지 않을까. 이왕이면 같은 기저에서 또 쓰인 시 한 편을 더 읽어야 하리.  

 

그대를 보냄에 눈물나고

그대를 다시 봄에 눈물나네

죽음처럼 어두운 시간

막막한 고통의 날들 보내고

절뚝이며 다가온 봄날에 기대어

서있는 친구여

그대는 거기서 나는 여기서

말없이 서로 바라보니

짧은 해 지고 벌써 날이 저무누나

    - 「봄날」

 

 친구의 ‘괴로움’과 ‘슬픔’을 친구의 그 심경 이상으로 동정하는 화자. 그 경과로 이윽고 닿고만 해 짧았던 어느 봄날 저녁. 하지만 비낀 노을은 사생의 경계를 넘어 양쪽을 왕래하는 듯한 탄식의 정조에 매여 쉽게 질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