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77)] 김경옥 '아흔 살의 종이학'
아흔 살의 종이학
김 경 옥
손톱만 한 새가 난다 어머니 손끝에서
한 마리 접는 일은 눈 감고도 환하다며
어눌한 손가락으로
깃털을 살려낸다
가난한 젖가슴으로 빚어낸 종이 날개
내리사랑 입김을 따뜻하게 불어 넣고
날아라 주문을 왼다
젖 냄새 앞섶에서
겹겹이 닿은 손길 천 마리 학이 되어
하늘빛 우러르며 손바닥 차고 올라
마침내 하늘을 난다
아흔 소원 영근다
한때 젊은이들 사이에서 천 마리의 종이학을 접는 일이 무슨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었다. 그것이 소원을 이루어 준다고 하여 정성스레 접어 연인이나 친구에게 선물을 하기도 했다. 센바즈루[せんばずる 千羽鶴]라고 하는 일본 종이접기의 하나로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굳이 따질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학은 십장생의 하나로 장수를 상징하는 동물로 여겼고 충정이나 정절의 표상으로 문관 중에서 당상관들의 관복의 흉배에 두루미 수를 놓기도 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푸른 하늘을 나는 학을 보면 그 어떤 새의 비행보다 아름답고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아흔의 노모가 종이학을 접고 계시다. ‘손톱만 한 새’이다. 말씀이야 ‘눈 감고도 환하다’ 하시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말씀만 어눌(語訥)해지신 게 아니다. ‘어눌한 손가락’이다. 그 맵고 야무지시던 손끝도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다. 하지만 그 정성만큼은 전혀 무뎌지지 않으셨다. 기어코 종이학의 ‘깃털을 살려낸다’
아, 어머니라는 이름. 어머니는 누구인가. 임종 직전의 골드문트는 나르치스의 손을 잡고 ‘그대는 어머니 없이 어떻게 죽을 수 있는가’라고 묻지 않았는가. 위대한 사랑으로 자식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으신 어머니의 젖가슴이다. 인제는 비록 ‘가난한 젖가슴’이지만 그 가슴으로 ‘빚어낸 종이 날개’를 ‘젖 냄새 앞섶에서’ ‘내리사랑 입김을 따뜻하게 불어 넣고/날아라 주문을 왼다’
어머니의 ‘겹겹이 닿은 손길’이 마침내 ‘천 마리 학이 되어/하늘빛 우러르며 손바닥 차고 올라/마침내 하늘을 난다’ 어머니의 ‘아흔 소원 영근’ 것이다. 어머니의 소원이 무엇일까는 굳이 물을 일이 아니다.
3연으로 된 시조이다. 비교적 짧은 형태일 수밖에 없는 시조에서 행과 연 사이에 걸친 여백을 통해 깊은 성찰을 이끌어내는 좋은 시를 만난 일이 기쁨이다. 따뜻한 차 한 잔이 불현듯 그리운 계절이고 그런 시간이다. 그런 창가에서 읽기를 권하는 시이다.
김경옥 시인
시조집 『코스모스와 달』
『덕자』
『노송지대 꽃길에 앉아』
경기시조시인협회 부회장
수원문인협회 수석부회장
홍재백봉문학상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