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78)] 정 겸 '골무'

김준기 수원시인협회 회장

 

골   무

                     정  겸

어머니가 반지그릇을 정리하다

반달모양의 소가죽 한 점 발견했다

한참 동안 눈길을 거두지 않더니

“아이고, 시집 온 첫날,

네 할미는 뭐가 그리 급한지 이것을 내게 주더라”

한숨 반, 한탄 반 중얼대며 오른쪽 중지에 낀다

 

황토 묻은 시아버지 삼베적삼이며

절구질에 땀 배인 시어머니 무명저고리며

남편의 재건복과 시삼촌의 빛바랜 녹색 야전점퍼,

손아래 시누이의 혼수이불까지

명주실처럼 긴 세월을 한 올 한 올 엮어나갔다

 

천둥치고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한 조각 소가죽에 의지한 채

날카로운 바늘귀를 조심조심 누르며

세상의 두꺼운 벽을 더듬더듬 뚫고 나갔다

 

주름진 손가락 마디마디를

감싸고 있는 작은 공간 속에서

목화송이 하얗게 터지며

물레 돌아가는 소리 들린다

다듬이질 소리가 공명처럼 되살아난다

 

갈기갈기 헤진 가죽, 피멍 맺혔다

꽃누르미가 되어버린 붉은 꽃의 흔적들

‘어머니, 저 꽃잎

내 DNA하고 일치하네요’

 

2011년 《수원詩人》 창간호에 정승렬 시인이 발표한 「골무」라는 시(詩)의 전문이다. ‘골무’를 아는 이가 요즘 젊은 세대 중에서 몇이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그쪽의 일을 직업으로 하는 이가 아니면 거의 없을 것 같다. 

그랬다. 

옛날의 어머니가 삼십 촉도 안 되는 백열전구 불빛 아래에서 바느질을 하실 양이면, 으레 오른쪽 중지 끝에 끼었던 물건이 골무다. 엄지와 검지로는 바늘을 쥐어야 하니 골무를 낀 그 손가락으로 바늘귀의 끝을 지긋이 눌러야 했던 것이다.

시인의 어머니도 이 땅의 어머니 중 한 분이시니 골무에 얽힌 사연이 없을 수가 없다. ‘반지그릇’은 ‘반짇고리’의 함경도 사투리이다. 시인의 부모님 고향이 혹 그쪽이실까. 아무튼 그 안쪽 한 귀퉁이 골무를 발견하고 인제는 노경에 이르신 어머니가 새삼 그 옛날의 골무를 ‘한숨 반, 한탄 반’이 섞인 소리를 내시면서 껴보신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시인은 어머니가 바느질하시던 모습을 회상해 본다. ‘시아버지 삼베적삼, 시어머니 무명저고리와 그리고 남편의 재건복과 시삼촌의 야전점퍼’는 나이가 적어도 60대 이상의 세대가 아니면 그 옷이 무슨 옷인지도 모를 이름들이다. 그 옷들을 바느질하면서 ‘명주실처럼 긴 세월을 한 올 한 올 엮어나’오신 분이 시인과 우리네의 어머니가 아닌가.

어머니가 살아오신 세월은 ‘천둥치고 바람이 불어’왔다. 그 세월을 골무라는 ‘한 조각 소가죽에 의지한 채/날카로운 바늘귀를 조심조심 누르며/세상의 두꺼운 벽을 더듬더듬 뚫고 나’오신 것이다. 그 골무에서는 ‘목화송이 하얗게 터지며/물레 돌아가는 소리’와 ‘다듬이질 소리가 공명처럼 되살아’나 들린다. 

그다음이 이 시의 절정이다. 

오랜 세월을 어머니의 손끝에서 함께 하며 헤진 골무에 맺힌 손가락 끝의 핏자국들. 그것은 차라리 ‘꽃누르미’이다. 압화(押花)라고도 한다. 납작하게 눌러서 수분을 제거하고 말린 꽃잎을 일컫는 어여쁜 말이 ‘꽃누르미’이다. 그 골무에 배인 꽃잎의 흔적들은 실은 어머니의 핏자국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를 있게 한

 

 

정  겸 시인(본명 정승렬)

2003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시집 『푸른 경전』, 『공무원』, 『궁평항』 등

공무원문예대전 행정안전부장관상, 경기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