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30리 뛴 수원양반? 더 심한 자린고비도 있었네!

김우영 논설실장 / 시인
일제 강점기 수원 팔달문 시장의 모습. (사진=수원시)
일제 강점기 수원 팔달문 시장의 모습. (사진=수원시)

‘수원깍쟁이’는 수원 사람을 비하해 부르는 멸칭(蔑稱)이다.

그러나 사실 깍쟁이는 ‘가게쟁이’의 변형어다.

임시로 만든 작은 점포(상점)를 뜻하는 ‘가가(假家)’가 가게로, 가게쟁이가 깍쟁이로 변한 것이다. 즉 깍쟁이는 장사를 하는 상인이다.

대표적인 상인 집단도 있었다. 한양의 경강상인(京江商人), 개성의 송상(宋商), 평양의 유상(柳商), 의주의 만상(灣商), 동래의 내상(萊商) 등이다.

수원의 상인들도 유상(柳商)이라고 불렀다. 수원상인들은 애국애족의 결기도 있었다. 3.1운동 때는 수원 깍쟁이들이 단결해 철시를 감행하기도 했다.

수원깍쟁이가 본격적으로 소문난 때, 다시 말해서 수원 경제가 가장 활성화된 시기는 정조대왕 시기가 아닌가한다.

수원에 신도시와 화성이 조성되면서 전국에서 장인(匠人)들이 모여들었고 시중에 돈이 돌았다. 당연히 인구도 유입됐다. 성 안밖에는 크고 작은 상가들이 형성됐다.

정조대왕의 전폭적인 지원도 더해져 수원은 전국 상권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그러므로 깍쟁이, 즉 가게쟁이는 수원의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수원 사람은 발가벗고 30리 뛴다’는 부정적인 말도 나왔다.

예전에 고 안익승 선생이 정리한 수원 옛 이야기에는 이에 대한 내용도 들어 있다.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화성성안에서 30리쯤 떨어진 떡전거리(병점)에 양반이 살고 있었다. 평소 효성이 지극한 선비여서 고을에서도 칭찬이 자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원에 선친의 제수용품을 사러 나왔다가 친구의 권유로 못하는 술을 한잔 하게 되었고 그만 취해 잠이 들었다. 잠이 깬 그는 친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의관도 정제하지 못한 채 떡점거리까지 뛰어 갔다는 얘기다. 선비가 의관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뛰었으니, 발가벗고 뛰었다고 와전된 것이다.

어찌됐거나 수원사람들로서는 별로 반갑지 않다.

그래서 고 심재덕 수원시장이 수원문화원장을 할 당시 KBS와 협의해 ‘전설의 고향’에 이 이야기가 방영된 적도 있다.

“수원이 가장 불명예스러운 것이 ‘수원 깍쟁이 엄동설한에 빨가벗고 30리 뛴다’는 얘기야. 그래서 ‘수원사랑’ 편집위원들에게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찾아 봐라’고 말했지. 그리고 조사된 내용을 가지고 KBS의 한정희 피디를 만나서 ‘전설의 고향’에 방영해달라고 요청했고. 수원에서 촬영을 주로 했지. 촬영할 때 문화원 가족들이 얼마나 열심히 도왔는지 모른다고. 그 당시는 전설의 고향이 거의 없어질 때였거든. 전설의 고향 원제목은 ‘탈의주자(脫衣走者)’였고, 부제가 ‘벗고 30리 뛴 수원 양반’이야. 수원사람이 빨가벗고 뛴 것은 효를 생각했었기 때문에 이라고 밝힌 거지.”

그가 수원시장과 국회의원에서 물러나 야인생활을 하고 있을 때 인터뷰한 내용이다. 아무튼 수원사랑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최근 ‘수원 깍쟁이’는 근처에도 못갈, 겨우 30리가 아니라, 충청도와 경기도를 오가는 장거리에서 펼쳐진 충북 음성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음성사람이 된장에 앉았다 달아나는 파리를 보았다. ‘그 된장 놓고 가라’고 외치며 용인의 어떤 고개까지 따라 왔다. 하필 그 파리는 여인의 엉덩이에 앉아있었다. 무심코 손으로 치고 나서야 ‘아차 실수했구나’해서 그 고개 이름이 ‘아차지고개’라고 불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일설에는 아차지고개에서 파리를 놓치고 ‘아차’라고 한 것이 유래라고도 한다.)

이렇게 파리를 놓치고 돌아가는 길, 다리에 힘이 빠져서 어정어정하고 걸어갔기 때문에 ‘어정’이란 이름도 생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음성엔 자린고비라는 실존인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평생 근검절약을 실천해 한없이 인색했지만 남을 돕는데 앞장서 공적비까지 남아 있다고 한다. 음성에서는 자린고비상을 시상한 적도 있다.

경북 안동시에도 된장에 들어갔다 나온 파리 다리에 묻은 된장이 아까워 따라가다가 좋은 땅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 벌판 이름이 ‘장파리’라는 것이다.

내 주변엔 ‘수원깍쟁이’가 많다. 그런데 인정머리 없는 깍쟁이가 아니다.

그들은 잘 나눠준다. 해장국집에서는 선지덩어리 하나라도 더 얹어 주려고 하고, 담배 한 갑을 사면 슬그머니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어준다. 호프집에선 자신들이 먹던 밑반찬도 내어준다. 손자와 함께 가면 냉장고에서 주인이 먹으려고 두었던 아이스크림을 꺼내 선뜻 내민다.

이래서 이 깍쟁이 동네 수원을 못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