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저 매향동 느티나무, 김소월 ‘초혼’ 읽던 까까머리 소년 기억하고 있을까?

김우영 논설실장 / 시인
매향동 느티나무. (사진=김우영)
매향동 느티나무. (사진=김우영)

어제가 여름인 듯싶더니 어느새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내 삶도 깊어가고 있다.

가을의 단골 산책 코스인 화성 동북 쪽 성 밖 동공원의 억새 숲을 지나며 저녁 햇살을 받아 빛나는 그 찬란한 풍광에 연신 감탄했다. 억새꽃이 활짝 피니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천천히 걸어 용연을 지나고 화홍문 앞에 잠시 멈춰 서서 내 팔뚝 보다 굵은 잉어들의 느긋한 유영을 바라보다가 수원천을 타고 조금 더 내려와 동신교회를 바라보았다.

동신교회는 노리마츠라는 일본인 선교사가 세웠다. 조선인보다 더 조선을 사랑한 일본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라고 알려져 있다. 1896년 조선으로 건너와 수원지역에 이 교회를 세웠다. 교회 뒤편 언덕 아래엔 그의 묘비가 있다.

그리고 그 위엔 오래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팔달구 수원천로 392번길(매향동) 삼일고등학교·매향중학교 정문 옆이다. 1982년 수원시 보호수 13호로 지정될 당시 수령이 370년이었으니 400년이 넘었다.

높이 18m에 가슴높이 둘레 3.8m나 되는 거목이다. 그러나 워낙 구석진 곳에 있는데다 다른 나무들과 섞여 있고 한쪽은 경사가 심한 절벽이기 때문에 수원사람들도 이 나무의 존재를 잘 모르는 것 같다.

게다가 두 줄기의 나무 중 한 줄기는 거의 고사 상태여서 외관도 볼품이 없다.

매향동 느티나무 뿌리부분. (사진=김우영)
매향동 느티나무 뿌리부분. (사진=김우영)

그런데 이 나무는 오랜 세월 이 근방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오랫동안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오면서 어쩌면 용연과 용두암 전설에 나오는 용과 깊은 교감을 나누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나무가 있는 곳은 전설처럼 용이 승천하다가 떨어져 굳어버린 몸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 내가 수집해 정리한 용연 전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현재 방화수류정 아래에 용지, 또는 용연이라고 부르는 연못이 있다. 용지 절벽에 있는 방화수류정은 화성 시설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건축미를 지닌 건축물로 이곳 사람들은 일명 용두각이라고도 하며, 그 자리는 용의 머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용두암이라고 부른다.

옛날 정조가 화성을 쌓으면서 방화수류정을 짓기 전, 이곳은 수원천이 휘돌아 나가는 제법 깊은 연못이었다. 이곳에는 하늘로 올라가기를 기다리며 천년동안 수양을 쌓던 용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용에게는 매일 연못으로 놀러 나오는 귀여운 한 소녀를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소녀는 아리따운 여인으로 성장했다. 그녀를 사랑하게 된 용은 승천하다가 여인의 눈과 마주친 순간 땅으로 떨어졌다. 굳어진 용의 몸은 용연 옆으로 떨어져 내려 언덕이 되었고 머리 부분은 바위가 되었다. 후에 사람들은 이 바위가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용두암으로 부르게 되었고 용이 살던 연못은 용지, 또는 용연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 용이 떨어져 내리면서 머리는 용두암이, 몸체는 성벽이 쌓인 언덕이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느티나무가 있는 언덕은 용의 왼쪽 앞 발 쯤에 해당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전설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신비로움도 생긴다.

전기한 것처럼 이 느티나무는 400년 세월 동안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서 있으면서 이 근처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보았을 것이다.

우선 정조의 명으로 축성된 화성의 공사 과정, 방화수류정 앞에서 정조가 활을 쏘던 모습, 3.1운동 때 이 언덕과 용연에서 일어났던 만세 시위 장면, 발아래 동신교회에 일본인 선교사 노리마쓰가 들어오던 장면, 해방 후 수원사람들이 언덕위에 있던 일본인 순사 노구찌의 순국비를 때려 부수던 모습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6.25 이후 방화수류정 앞에까지 움막을 짓고 살던 피난민들의 애환과, 비가 내리면 수원천에서 물고기를 잡아 천렵국을 끓여 막걸리를 마시던 동네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어떤 날 저녁 이 언덕에서 김소월의 시 ‘초혼’을 읊조리며 눈물을 글썽거리던 까까머리 소년, 내 중학생 시절의 모습도 기억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