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80)] 최영선 '2014 종로에서'
2014 종로에서
최 영 선
해거름에
취재를 핑계로
한 잔 술 하던 날
마음 많이 아픈 친구놈을 만났다
소주와 생맥주
그리고 통닭 한 마리
그가 말한다
어금니 없어서 고기는 못 먹겠노라고
그래도 친구는 요즘 행복하단다
이제는
이 악물고
살지 않아도 되어서…
어느새 삭아서 구멍이 난
내 어금니 하나
11월 어둠 속의 눈발처럼 부서지고
그의 눈에서
이미 말라버린 눈물이
이제 내 가슴 속을 흐른다
우리가 마시는 술만큼이나
시큼털털한 맛이다
‘해거름에/취재를 핑계로/한 잔 술 하던 날/마음 많이 아픈 친구놈을 만났다’
시의 제목이 ‘2014 종로에서’인 것으로 봐서 벌써 11년 전의 시이다. 최영선 시인의 나이가 50대에서 60대로 꺾일 무렵이다.
‘친구’가 아니다. ‘친구놈’이다. 그 나이에 ‘호(呼)놈’을 하는 친구라면 보통 막역한 사이가 아님이 분명하다. 누구와 마셨는지 능히 짐작이 간다. 수원 여민각 뒷골목에서 ‘소주와 생맥주/그리고 통닭 한 마리’를 놓고 마셨다면 어디서 마셨는지도 뻔하다. 그런데 술을 마시다가 ‘그가 말한다/어금니 없어서 고기는 못 먹겠노라고’라는 구절에서 더욱 그가 누구인지 확실해진다.
그다음이 울컥 눈물이 나는 구절이다. ‘그래도 친구는 요즘 행복하단다/이제는
이 악물고/살지 않아도 되어서…’ 그랬다. 우리는 그렇게 살았다. 어금니가 부서질 정도로 앙다물지 않으면 넘어 올 수 없던 그 험하고 높은 고개를 굽이굽이 넘어서 이 자리에 이른 것이다. 그 어금니마저 빠져 이제는 이 악물고 살지 않아도 된다니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아무래도 덧없이 흘러간 세월에 대한 서글픈 자조다. 괜스레 가난한 시인이 되어서 처자식에게 제대로 따뜻한 잠자리 맛난 음식 한 번 마련해 준 적이 있던가. 그래도 시의 길을 함께 걷는 도반 하나는 얻지 않았는가. 게다가 호놈을 할 수 있는 막역한 친구를.
친구의 말라버린 눈물이 내 가슴 속에 흐르다니.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간과 쓸개를 다 내보이는 간담상조의 사이가 아닌가. 그 눈물이 ‘우리가 마시는 술만큼이나/시큼털털한 맛이다’라고 했다. 시의 화자가 되는 시인이나, 짐작건대 시의 중심 대상이 되는 친구도 내게는 고등학교 1년 선배이다.
어느 분이 한잔 사시려나 모르겠네. 굳이 새삼 눈물 맛을 상기할 필요까지는 없고, 과연 종로 뒷골목 치킨집 맥주 맛이 시큼털털한지.
최영선 시인
1977년 『무풍지대』 동인으로 작품활동 시작
수원시인상 등 수상
수원시인협회 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