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장관 이룬 화성 동공원 억새꽃밭에서 가을의 뒷모습을 보다
어느덧 올해 가을도 막바지다. 내년 가을이면 나는 칠순이 된다.
그러니까 우리나이로 60대에 보내는 마지막 가을인 셈이다.
그것 참, 어느새...
내 마음 속엔 지금도 벗들과 여행 가서 피곤한 줄 모르고 강행군을 하거나, 한 밤중 무예24기 도반들과 진검을 들고 광교산에 올라가 건공중(乾空中)을 베어내는 연습을 했던 호연지기가 남아 있는데 말이다.
10년 전만 해도 티벳 카일라스(수미산)까지 삼보일배할 꿈을 꾸곤 했는데 이젠 광교산 계단 내려오는 것이 두려운 나이가 되고 말았다. 물론 팔달산 정도는 아직 문제가 없다.
그래서 언감생심, 등산 대신 산책을 운동 겸 마음공부의 포행(布行)으로 삼고 있다.
오래 전 칼럼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내가 사랑하는 산책코스는 △수원화성 △수원천 △시장과 성안 골목길 등이다. 가끔은 버스를 타고 시외로 나가 융건릉이나 남양순교성지, 발안읍내 등도 걷곤 한다.
동행이 있어도 좋지만 유유자적 혼자 걷는 것 역시 나쁘지 않다.
요즘은 화성, 특히 화성의 동북쪽 성 밖으로 자주 길을 잡는다. 거기에 억새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연무동 ‘동공원’이다. 이곳은 원래 6.25 후 피난민들이 내려와 움막을 짓고 살던 곳이다. 성벽에도 얼기설기 판자나 함석으로 덧대 비만 피할 수 있도록 만든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옛 사진에는 방화수류정 코앞, 심지어는 방화수류정 안에도 사람이 살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연무동에 피난민들이 몰려든 것은 이곳이 운동장으로 사용되던 공터였기 때문이다.
그 후 성벽 인근 가옥들은 철거됐고 이곳에 동공원이 조성됐다. 그리고 2017년 동공원 지하에 주차장이 들어섰다.
그 상부, 동북공심돈 뒤편에서 용연으로 이어지는 구간엔 억새밭이 조성됐다. 당시 수원시청의 실무자는 현재 사단법인 화성연구회 이사장이자 한국국가유산지킴이연합회 회장인 최호운 박사다.
성 밖에 억새밭을 조성한 이유는 지난 2023년 10월 17일자 ‘김우영 광교 칼럼-수원의 가을, 참 좋다’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시계(視界)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억새군락지에는 다른 나무들이 잘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또 억새꽃을 말려서 불화살 재료로 썼다는 것이다.
물론 지붕 이엉 재료나 소나 말들의 먹이로도 사용됐을 것이다. 보릿고개에는 사람들도 먹었던 구황식물의 역할도 했단다.
뿐만 아니라 치료제로도 사용됐다. 줄기나 뿌리는 이뇨작용을 돕고 해열, 해독, 풍사, 암 치료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성곽주변의 억새는 단순히 보기 좋으라고 심어 놓은 것이 아니었다.
동공원 억새밭 조성을 주도한 최호운 박사의 혜안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최근 이곳은 또 하나의 수원 명승지로 떠올랐다.
가을철이 되면 산책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연인들과 가족, 웨딩촬영을 하는 이들로 붐빈다.
특히 저녁 무렵 억새꽃은 역광을 받아 아름답게 빛난다. 흰 억새꽃밭 너머로 노을이 지는 풍경은 황홀하다. 환상 같다.
그런데 이 꿈같은, 그림 같은 풍경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가을이 가고 겨울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대하려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억새밭 가운데 우뚝 서있는 명물 큰 은행나무도 지금 잎들을 무더기로 내려놓고 있으니 서두르시길...
오늘 억새밭에서 만난 이 가을, 황혼이 빛나고 있다.
저무는 날의 내 뒷모습도 저리 아름다워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