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오산시의 ‘영주귀국 사할린동포’ 돌봄, 가슴이 따듯하다
“1945년 8월15일, 조국의 해방 소식에 우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꿈에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가 그리운 가족들을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1945년 9월 2일 항복문서에 서명한 일본은 몇 해에 걸쳐 조용히 일본인만을 챙겨 섬을 떠났습니다. 소련령이 된 남(南)사할린에 남은 한인들은 일본 국적이라는 이유로 징용되었지만,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남겨졌고, 소련의 ‘무국적자’가 되어 언제 올지 모를 귀향선 만을 숨죽여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국적은 물론이요, 우리글로 된 이름 하나 제대로 갖지 못한 채 수십 년이 흘렀습니다”(사할린한인협회 홈페이지)
‘사할린한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에 의해 사할린으로 징용돼 전쟁 후에도 이 곳에 잔류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조상과 그의 자손들’이다. 박수호 전 사할린국립대 교수에 따르면 “사할린 한인은 한 평생 동안 4번의 국적과, 3번의 공식어를 바꿔야 했던 사람들이며 여러 나라의 무책임한 정치로 인해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한 사람들”이다.
노후나마 고국에서 보내길 원하는 이들의 소망은 1990년부터 시작된 사할린동포 영주귀국사업으로 이루어졌다. 영주 귀국을 희망한 사할린동포들은 서울과 안산, 부산, 오산에 등지에 정착해 생활하고 있다.
오산시의 경우 2009년 이후 50가구 106명이 영주귀국, 세교지구 주공 휴먼시아 아파트에 입주했다. 그러나 현재 오산에 거주하는 사할린 동포 노인은 70명에 지나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세월이 흐르며 그 수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오산시는 동포들에게 무료 간병서비스를 제공하고 3개월이 소요되는 국적 취득 때까지 자원봉사자를 파견, 병원과 관공서 이용 안내, 시장보기 등 생활밀착형 봉사를 펼쳤다. 기초생활수급비와 기초노령연금, 장애수당도 추가 지원했다. 또 한글교실과 건강교실, 문화교실 등도 운영해 사할린동포들이 고국생활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안정적인 삶과 상생을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1일엔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직접 체험함으로써 민족적 정체성과 역사적 뿌리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사할린 동포 40여 명을 대상으로 수원 화성과 융건릉 일대에서 역사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사회에 안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맞춤형 독서문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지역사회도 나섰다. 바르게살기운동 오산시협의회와 한신대학교, 오산 민들레실버대학 등은 효도잔치, 효도관광, 송년행사, 고국탐방 등의 프로그램을 잇따라 개최하는 등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의 아픈 역사로 고통을 겪어온 사할린 동포들을 향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앞장서서 실천하고 있는 오산시와 지역 사회를 성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