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83)] 전대호 '억새꽃'
억새꽃
전 대 호
도로변 억새꽃
오래전 녹음된 음악.
백 년도 넘었겠어,
빛바램이 저리 곱다니.
잘 숙성된 잡음.
어른거리는 간섭무늬.
지극히 절제된 언어의 정수를 보여주는 좋은 시를 만나는 아침은 참 좋다. 갓 내린 한잔의 커피와 드보르 작의 첼로 협주곡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전체 2행 3연으로 된 전대호 시인의 시 「억새꽃」의 전문이다. 2연에서만 꼭 필요한 풀이말을 쓰고 1연과 3연은 이름씨만으로 행과 연을 닫으면서 길고 깊은 여운을 준다.
억새가 장관을 이루는 철이면 너나 할 것 없이 억새꽃 이랑이 일렁이는 능선을 찾는다. 함께 우르르 몰려가 삼삼오오 어울려 사진도 찍고 하하 호호 웃다가 돌아오곤 한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시인이 마주한 억새꽃은 그런 억새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저 일상에서 길을 지나다 ‘도로변 억새꽃’을 마주했다.
‘오래전 녹음된 음악’을 듣다니. 어떤 음악이었을까. 바이올린이나 해금과 같이 높은 음역의 소리는 아니지 싶다. 첼로나 어쩌면 그보다 더 낮은 콘드라베이스의 현이 울리는 소리, 혹은 낮게 흔들리는 대금(大笒)의 요성(搖聲)일지도 모른다. 혹은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하고 우리네 아버지가 즐겨 부르시던 옛노래 「짝사랑」일 수도 있다. 으악새, 다시 말해 억새가 슬피 우는 소리가 갈대숲에 녹음되어 있다.
‘백 년도 넘었겠어,/빛바램이 저리 곱다니.’ 그렇다. 수택(手澤)이라고 했다. 짧은 시간 닦고 광을 내어 나는 빛이 아니다. 오랜 세월 쓰다듬고 보듬어 그 손때로 나는 윤(潤)이다. 그래야 바랜 빛이 비로소 고운 빛깔을 제 몸에 감는다. 그 소리는 ‘잘 숙성된 잡음’이다. 하필이면 ‘잡음’일까. 그냥 곱기만 한 소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속에는 우리네 삶의 희로애락이 다 녹아들어 마치 한 도가지 속 제대로 삭은 탁배기처럼 제대로 숙성된 소리라는 것이다.
끝 행이 시의 흐름을 기막히게 마무리해 준다. ‘어른거리는 간섭무늬.’라지 않았는가. 까마득한 학창 시절 과학 시간에 배웠던 그 낱말이 새삼 억새밭에서 일렁이는 빛깔에 실려 되살아났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말 그대로다. 빛의 간섭에서 생기는 무늬가 간섭무늬이다. 사물이 지닌 빛을 한 가지로 고정하는 거야말로 얼마나 위험한 인식인가. 빛의 순간적 변화를 그물로 잡아내어 캔버스에 옮긴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생각하면 도움이 된다. 억새꽃은 민중의 꽃이다. 우리네 삶 속에서 숙성된 소리는 흔들리는 억새꽃처럼 다양한 간섭무늬로 어른거리는 빛들이다.
올겨울 들어 최고 한파라 한다. 겨울은 추워야 겨울이다. 오후에 수원문화재단에서 문화도시 자문위원 모임이 있다. 나간 김에 모임이 끝나면 그곳에서 가까운 화서공원에라도 들러야겠다. 여전히 억새는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전대호 시인
199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 <가끔 중세를 꿈꾼다>(1995), <성찰>(1997) <지천명의 시간>(2022), <내가 열린 만큼 너른 바다>(2024)
저서: <철학은 뿔이다>(2016), <정신현상학 강독 1>(2019), <정신현상학 2>(2021)
번역서: <위대한 설계>, <로지코믹스>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