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잘 살아라, 혹여 다툼이 있을지라도 잡은 손은 절대 놓지 말거라”

김우영 논설실장 / 시인
신랑 신부에게 축사를 하는 모습. (사진=김우영)
신랑 신부에게 축사를 하는 모습. (사진=김우영)

내가 군대 졸병 생활을 할 때이니 1978년도다.

훈련을 마치고 내무반으로 돌아오니 스포츠 신문이 침상 위에 놓여 있었다. 일등병 시절이라 고참들보다 먼저 신문을 집을 수 없어 슬쩍 곁눈질만 하곤 내 자리로 돌아가 군장을 풀고 있었다. 그런데 고참 중 한 사람이 나를 부른다.

“야 김 일병, 너 이 사람 아냐? 시를 쓴다는데.”

보니 스포츠신문에 큰 사진과 함께 정말 아는 사람 이야기가 나와 있다. 안양에 사는 내 친구 이숙희 시인이다. 그가 추리닝을 입고 면사포를 쓴 채 활짝 웃으며 신랑과 함께 운동장을 뛰며 입장하고 있었다.

남편은 축구를 사랑하는 조기축구 회원이어서 운동장이 혼인식장이 된 것이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일이어서 스포츠신문이 대서특필하지 않았을까.

제대 후 나도 혼인을 했다. 1981년 4월 19일.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수원역 앞 예식장이었다.(지금은 사라졌다.) 지극히 평범한 예식이었다. 친구가 사회를 봤고 지역의 명사였던 안익승 선생이 주례를 서주셨다. 예식이 끝난 후엔 폐백이란 것을 했고, 하객들은 인근식당으로 안내돼 식사를 했다.

요즘 이른바 ‘웨딩홀’로 불리는 예식장들은 뷔페를 함께 운영하고 있어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그때는 주로 예식장 인근 중국집의 짬뽕이나 한식당의 갈비탕, 또는 설렁탕을 대접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예식의 형식이 많이 달라졌다. 주례는 거의 사라졌다. 예식 분위기도 예전처럼 엄숙하거나 딱딱하지 않다.

이색적인 혼인식도 많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선상, 수중, 국립공원, 국가유산 등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엔 옛 대통령별장이었던 청남대나, 설악산 국립공원, 13세기 몽골 침입기에 고려 왕실이 약 39년간 궁궐로 사용한 역사적 장소 강화도 고려궁지에서도 혼인식이 진행됐다.

수원에서는 수원박물관이나 화성행궁 앞마당에서 혼인식이 진행된 적이 있다.

예식 내용도 예전과는 크게 다르다. 전기한 것처럼 예전엔 엄숙하고 딱딱했지만 지금은 연예행사처럼 재미있고 유쾌하다. 신랑신부가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퍼포먼스를 하는 것은 물론 양가 부모들도 적극 나서 하객들을 즐겁게 해준다.

지난 토요일 참석했던 조카딸의 혼인식도 그랬다.

신랑의 입장퍼포먼스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오만한 자세로 등장한 녀석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일어나더니 하늘을 향해 검지손가락을 찌르듯이 치켜 올렸다. 그리곤 도도한 표정으로 하객들을 바라보며 걸었다. 웃음과 환호가 식장을 가득 채웠다.

제 아버지와 함께 입장하는 신부도 만면에 미소가 그득하다. 식장에서 신부가 웃으면 딸을 낳는다는데...

주례는 없었고 성혼선언문은 신랑 아버지가 읽었다. 이어진 축사는 신부의 동생이 했다. 이 아이는 문학적 소양이 남달랐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각종 글짓기 대회와 공모전에서 큰 상을 여러 번 탔다. 내 뒤를 잇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감을 갖기도 했다. 자매간의 소소한 이야기에다 가족의 따듯함, 그리고 언니가 집을 떠나는 서운함이 절절하게 드러난 축사는 하객들을 미소 짓게 했다가 눈시울을 시큰거리게 만들었다.

축가를 부르는 신부 아버지와 막내 동생. (사진=김우영)
축가를 부르는 신부 아버지와 막내 동생. (사진=김우영)

이날 혼인식의 하이라이트는 축가였다.

신부의 아버지와 막내아들이 함께 나와 부른 노래는 하객들을 열광시켰다.

나도 깜짝 놀랐다. 혼주인 내 막내 동생의 노래실력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마추어 보컬그룹의 멤버로도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호, 동생의 아들 노래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이런, 내가 잠시 잊고 있었구나. 녀석이 뮤지컬 학과를 나와 현역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 서울 대학로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뮤지컬 ‘프리즌’ 주인공 브라이언 역을 맡은 배우 김남영이 내 조카인 것을.

아, 그런데 이 순간 왜 내 어머니와 아버지 생각이 났을까. 두 분이 막내아들의 딸이 혼인을 하는 이 장면을 보셨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이북에서 내려와 친척이 없었지만 이제 자식·손주들이 번성해 일문을 이루었고, 더구나 증손주들을 포함한 당신들의 자손 모두가 이렇게 함께 모여 있는 것을 보신다면.

잘 살아라. 살다가 간혹 다툼이 있을지라도 잡은 손은 절대 놓지 말거라. 아이는 무리하지 말고 너의 아빠 엄마처럼 셋만 낳아라. 이렇게 축원하며 식장을 나섰다. 아우들과 마신 소주 몇 잔의 취흥이 올라 걷는 내내 윤항기의 ‘나는 행복합니다’, 아이유와 김창완이 부른 ‘너의 의미’ 노래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