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샘터'에서 첫 글 샘물이 나온 것은 1970년 4월이다.
고인이 된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를 표방하며 창간호를 냈다.
그리고 바로 '시대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하며 모두의 기억속에 남는 알찬 잡지로 우뚝섰다.
관공서와 병원 등 공공장소 거치대에서부터 군대 내무반에 이르기까지, 어느 공간에서나 공허(空虛)를 사유(思惟)의 시간으로 바꿔내서다.
잡지 '샘터''는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시절 따뜻한 글로서 독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건넸다.
한때는 월 50만 부까지 팔릴 만큼 큰 사랑을 받았다.
독자들이 보내온 투고만 해도 한 달에 400통이 넘을 정도였다.
매달 50여편의 글을 쓰는 필진도 당대를 대표하는 문인과 명사들로 구성됐다.
1975년부터 35년 동안 최장기 연재 기록을 세운 소설가 최인호의 ‘가족’.
법정스님의 ‘산방한담,’ 피천득선생의 주옥같은 수필도 있었다.
이해인 수녀, 강은교·정호승 시인, 정채봉·장영희 교수 등의 글도 독자에게 감동을 주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은 이곳에서 기자로 일하며 작가로서 미래를 꿈꿨다.
장욱진과 천경자 같은 거장들은 기꺼이 표지와 삽화를 그려주었다.
그리고 책값은 창간호 이후 한동안 '100원' 을 고수했고 독자사랑은 더했다.
당시 책값은 “담배 한 갑보다 싸야 한다”는 김 전 의장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어려운 시절 독자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아닐수 없다.
이런 책값은 최근 까지도 담배값 '마지노선'을 고수했다.
그런 '샘터'가 내년 1월호(통권 671호)를 끝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다는 소식이다.
휴간은 2019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당시 창간 50주년을 맞는 2020년 목전 이어서 안타까움이 컸다.
특히 2월호를 내게 된다면 통권 600호가 나오는 국내 최장수 교양지여서 더욱 그랬다.
휴간이라는 극약 처방의 원인은 판매부수 극감과 가중된 경영난이었다.
다행히 소식이 전해지자 샘터의 역사와 추억을 함께 한 독자들의 격려, 후원이 이어졌다.
정기구독 신청도 쇄도했다. 기업들도 지원의 뜻을 밝혔다.
덕분에 고비를 넘기며 휴간 방침은 철회됐고 샘터에서 글 샘물이 다시 솟았다.
그러나 6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올해말 결국 기약없는 휴간에 들어갔다.
55년이 지난 지금도 '샘터' 글과 채 마르지 않은 잉크냄새를 잊지 못하는 독자들이 무수히 많다.
잡지의 힘은 잡지를 읽어주는 독자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있지만, 디지털시대, 설 자리를 잃어가는 글 매체의 몰락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