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일보=이민정 기자] 천도교 수원대교구 독립운동 안내표지판 제막식이 21일 천도교 수원대교구 수원교당 터(팔달구 북수동 303-4) 인근 소공원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천도교 수원대교구 안춘보 교구장과 교인, 내빈으로 이재준 수원특례시장, 김재옥 수원상공회의소 회장, 수원시 관계자, 경기3·1운동기념사업회 관계자, 지역 시의원들이 참석했다.
행사는 청수봉전, 심고, 주문병송 등 천도교 의식에 이어 천도교 대표와 수원시장, 주요 인사들이 참여한 제막식 순으로 이어졌다.
안춘보 교구장은 “수원시의 도움으로 오늘 뜻 깊은 안내판 제막식을 갖게 됐다”면서 “수원교구는 종교 활동 외에도 수원지역 3·1운동에 깊이 관여했으며 근대교육과 민족사상을 가르치는등 수원지역 사회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이재준 수원시장은 “천도교 수원교구는 수원 지역에 근대교육을 보급하는 데 앞장섰고, 항일 단체 신간회 수원지회가 만들어지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며 “1919년 연무대에서 시작된 수원의 독립운동 행렬이 이 자리를 지나갔음을 알리는 안내판이 시민들에게 큰 울림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천도교 수원교구는 1906년 장안문 밖 영화동에 설립됐고, 1910년 성안 장안동으로 이전했다. 1919년 수원 지역 3‧1운동의 책원지(策源地) 역할을 했다.
1919년 3‧1운동 때 이병헌이 경성에서 내려와 이곳에서 만세 시위와 자금 모금 등 활동을 논의하던 중 발각돼 많은 교인이 피해를 당했다. 이로 인해 대교구도 폐쇄됐지만 교인들은 남양교구를 중심으로 각 교구들이 만세시위를 이어갔다.
근대교육을 실시하고 민족사상도 주입시켰다. 이곳에서 1927년 신간회 수원지회가 창립됐고, 1928년 천도교청년동맹이 결성됐다.
1936년 11월 북수리로 신축 이전할 때까지 25년 동안 천도교 수원교구 교당으로 수원지역 사회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지역 역사학자 한동민 박사는 당시 교당은 현 위치에서 북쪽으로 100미터 정도 떨어진 현 천주교 북수동 성당 관사 뒤편 도로변에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