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7-18일에 경주를 다녀왔다. ‘행복한 도덕사회 재건’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박약회(博約會 : 이사장 김종길)의 경주지회(지회장 최성춘)가 주관하는 〈제46차 전국유교문화학술대회〉에 참여하자는 가형의 권유가 있었고, 게다가 평소 답사하고 싶었던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 1491-1553) 선생의 고향 양동(良洞)과 선생을 기리는 옥산서원(玉山書院), 선생이 공부하던 독락당(獨樂堂)도 예방한다고 해 지체 없이 따랐다.
대회는 우리 사회의 심화되어 가는 제반 갈등을 전통 유학의 가치를 제대로 구현하여 극복하자는 지향과 〈고고고 실천운동〉 전개를 확인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고고고’도 인간성숙과 인간관계를 전제로, ‘행복하고, 배려하고, 서로 돕고’를 지표로 한다. ‘행복하고’는 자신과의 관계에서 추구하는 덕목인데, ‘혼자 있을 때도 옳은 행동을 선택한다’가 그 구체 지침으로 권유된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에 다르기 쉽기에 일관성을 유지하여 자아분열이나 자기혐오를 일소하자는 취지에서인데, 자신을 스스로 다행하게 긍정할 수 있게 하는 ‘신기독(愼其獨)’을 연상하게 한다. ‘배려하고’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추구하는 덕목으로, ‘함께 있을 때는 예의를 지키고 상대를 존중한다’는 구체 지침으로 표방된다. 그 어떠한 사람을 만나든 편견과 경시를 배제하고 오늘에 어울리는 예(禮)와 경(敬)의 태도로 우대하며 소통과 화합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서로 돕고’는 타인과의 관계가 확대된 사회 차원의 삶을 전제로, ‘공동체 안에서 협력과 나눔을 실천한다’를 구체 지침으로 설정하고 있다.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신의(信義)를 저변으로 하는 이 결합의 덕목 또한 우리 현재 사회의 분열 반목과 대조되며 철저한 재인식과 선의의 실천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한편 장년 노년의 청중들에게 ‘노인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 그 역할을 하자’는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의 제언이 있었는데, ‘어른 부재 세상’에 청중이 자신을 관련시키면서 일정한 책임의식을 촉진하게 하였다.
‘고고고’ 실천이 ‘어른’ 역할 수행과 다르지 않으며, 대단한 의지가 없더라도 일개 시민으로서 실천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 유학이 바라는 군자(君子)와 숙녀(淑女)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어른’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하였다. 더욱이 지난날에 여러 시행착오와 일탈이 있어 내심 유감으로 부끄럽다면 자신의 그 회오를 보정하기 위해서라도 특히 주변 청년들에게 말없이 그런 역할을 해보겠다는 용기를 내지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유학사에서 회재는 실천유학의 길을 생활 차원에서 개척한 선구자이다. 연산군의 난정, 중종반정 이후 공신들과 권신들의 거듭되는 폭정이 이어지는 와중에 굴복하거나 타협하거나 방관하지 않았다. 중종이 사돈 김안로를 다시 조정으로 복귀시키려하자 왕의 의도를 알고도 반대하였다. 사간원 사간 직책을 공정하게 수행한 회재는 파직되었고, 향리로 돌아가 1532년(중종 27)에 자옥산 자계 천변에 아버지를 이어 정사(精舍) 독락당(獨樂堂)을 짓고 시대의 불의와 패륜을 제어하는 공부를 하였다. 성리학을 우주와 세계를 구성하는 철리로만 접근하지 않고, 보다 분발하여 자기 시대의 타락한 인심과 추악한 정쟁을 극복하는 인성 함양의 텍스트로 탐구하였다. 인간 보편 도덕성의 원천을 정밀하게 확인하고, 그 발양 방안을 적극 탐구하여 기(氣)를 제어하는 리(理) 우선 의지와 그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규범들을 제시하였다.
참고로 독락당의 ‘독락(獨樂)’은 그 출전인 『맹자』 「진심장구 상」을 참조하면, 자신 혼자 학문과 산수를 즐기겠다, 나 혼자만이 고고하게 자연 도락(道樂)을 향유하겠다는 취지가 아니다. “옛 현명한 임금들은 선(善)을 좋아하여 권세를 잊었다. 옛 현명한 선비만이 어찌 홀로(獨) 그러지 않았겠는가. 그 도(道)를 즐겼고(樂) 사람의 권세를 잊었다. 그래서 왕공이 공경이 지극하지 않고 예를 다하지 않는다면 어진 선비를 잘 볼 수가 없었다.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면 어찌 그들을 신하로 삼을 수 있었겠는가(古之賢王好善而忘勢 古之賢士何獨不然 樂其道而忘人之勢 故王公不致敬盡禮則不得亟見之 見且猶不得亟 而況得而臣之乎).”
즉 ‘독락(獨樂)’은 공공의 선을 지향하며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 도리를 즐기겠다는 취지이다. 용기 있고 의연한 군자 행실의 자각이자 온아하고 개결한 표방이 아닐 수 없다. 이제 회재가 당시의 심경을 토로한 시 「독락(獨樂)」을 읽어볼 차례이다.
離群誰與共吟壇 : 무리를 떠나 왔으나 누구와 함께 시를 읊을까만
巖鳥溪魚慣我顏 : 너럭바위 새와 자계천 물고기가 내 얼굴을 알아보네
欲識箇中奇絶處 : 그 중에 빼어난 경치를 알고자 한다면
子規聲裏月窺山 : 두견새 울고 그 소리에 달이 산을 엿보는 모습
1행에서 ‘離群’이라 하였는데 서울 조정의 권력과 정쟁에 매인 관료들과의 거리는 물론 자신의 파직과 낙향이 타력에서가 아니라 사실은 선택이었다는 회포가 함축되어 있어 보이고, 그 정서를 읊는 ‘시’를 지어 주고받으며 소통할 동반자가 없다는 탄식이 이어진다. 하지만 2행에서 시인은 곧, 옛 청년시절 여기서 공부할 때 만났던 ‘너럭바위 새’와 ‘자계천 물고기’가 자신을 알아보고 반긴다고 스스로 위안한다. 한편 ‘巖鳥溪魚’는 그렇게 시인이 마주한 실물 묘사이면서도, 천석고황(泉石膏肓)에 연관된 ‘연비어약(鳶飛魚躍)’의 뜻깊은 시사라고 하겠다. 본성에 따라 자연 그대로 살아가는 생명의 자유와 타자와의 조화를 시인은 흠선하며, 자신도 그렇게 같이 누리려한다는 뜻을 행간에까지 걸쳐 표출하고 있다. 나아가 시인은 3행에서 이곳의 가장 수발한 경치를 궁금하게 하고, 4연에서 극화 같은 한 찰나를 제시한다. ‘두견새 울고 그 소리에 달이 산을 엿보는 모습’이라고. 즉 두견새가 울어울어 그 소리가 지상의 시공을 가득 채울 때, 밤하늘에서 교교히 빛나는 밝은 달이 산[북쪽의 도덕산, 동쪽의 화개산, 서쪽의 자옥산, 남쪽의 무학산]을 그윽한 시선으로 정답게 살펴보는 모습이라고 한다. 산의 이름들이 또한 심상치 않다. 이 시는 위 『맹자』 「진심장구 상」의 ‘그 도를 즐겼고 사람의 권세를 잊었다.(樂其道而忘人之勢)’를 주제로 하며, 그 자연스러운 무봉(無縫)의 형상화가 탁월하다. 참고로 이 시를 거듭 감상하니, 작중 그 ‘달’이 시인이 닮고 싶고 가까이 하고 싶은 도반(道伴)으로 더욱 부각된다.
다음 시 「계정(溪亭)」을 그래서 이어 읽으면 좋을 것이다.
喜聞幽鳥傍林啼 : 숲속 그윽한 새 소리에 즐거워라
新構茅簷壓小溪 : 작은 시내 가에 작은 띠집 새로 지었지
獨酌只激明月伴 : 홀로 술 마시며 밝은 달 짝하여
一間聊共白雲棲 : 흰 구름과 더불어 한 칸 집에서 살려하네
천연의 음악인 숲속 새 소리 듣고 밝은 달과 흰 구름과 같이 살며 인성 배양의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연찬하고 그 요령과 실천 절목을 탐구하던 회재는 1537년(중종 32)에 김안로 일당이 몰락하자 조정에 복귀하여 조광조 신원과 사림 등용을 건의하였다. 인종이 별세하고 을사사화(1545년 명종 즉위년)가 야기되고 양재역벽서사건(1547년 명종 2)이 획책되자 역시 도리와 우국충정에서 사류를 보호하는 한 시대 ‘어른’ 역할을 하였는데, 결국 강계로 귀양 갔고, 후세를 위해 자신의 평생 공부를 정리하다가 별세하였다. 그의 귀양과 별세도 공공의 위난을 외면하지 않고 중도를 실천하다가 스스로 선택한 순난(殉難)의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