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을
최 대 희
일흔두 살 그녀
처음으로 사랑을 알았다네
사진반에서 만난 할아버지 도식씨 보면
마음이 강물처럼 두근두근 한다네
북한강과 남한강, 두 물이 만난
두물머리 풍경 담으며
이모할머니 얼굴이 볼그레하다
볼그레한 얼굴과 연결된
속마음은
얼마나 더 붉게 물들었을까
최대희 시인이 2018년 가을 《한국시학》에 발표한 시이다. 이모할머니의 ‘볼그레한’ 사랑 이야기를 담담하면서도 맛깔스럽게 풀어나간 시이다. 이 시를 언제 썼는지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시를 발표한 2018년을 기점으로 하자면 일흔두 살의 이모할머니는 해방 전후에 태어나셨을 가능성이 크다.
시의 흐름에 초점을 이루고 있는 인물의 나이부터 언급하는 이유는 그가 살아온 시대가 어떠했나부터 짚어야 이 시가 풀리기 때문이다. 유년기를 민족 동란이라는 미증유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냈고 꿈 많던 가장 아름다웠던 나이 즈음에는 국민 절대다수가 절대빈곤의 늪에 빠져있던 시절이었다. 그 후 이어진 젊었던 시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사랑은 한때의 사치스러운 감정이었고 기억 속에서 까맣게 잊혀진 단어가 되었을 수도 있다.
‘일흔두 살 그녀/처음으로 사랑을 알았다네’
그 이모할머니가 일흔두 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사랑을 알았단다. ‘알았단다’의 음가는 ‘앓았단다’와 같다. 사랑을 ‘아는’ 일은 어쩌면 사랑을 ‘앓는’ 일이다. 나이 들어 건강도 지킬 겸 무언가 뜻있는 취미를 가지려고 시작한 ‘사진반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이름은 도식씨이다. 하필이면 사진을 찍으러 나간 곳이 ‘북한강과 남한강, 두 물이 만난/두물머리’이다. ‘도식씨 보면/마음이 강물처럼 두근두근 한다’ 때마침 서쪽 능선에 저녁놀이 걸려‘ 다행이다. 어쩌면 볼그레하게 달궈진 얼굴빛을 조금은 숨길 수도 있으리라. 이 시에서 가장 맛깔나는 시어를 꼽으라 하면 ’볼그레하다‘이다. 불그레하다’ 아닌 볼그레. 일흔두 살의 나이가 되었지만, 소녀적 감정이 고대로 담긴 낯빛이다. ‘사랑을 알았다네’는 사랑을 앓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저녁노을 빗긴 두물머리의 풍경을 제대로 찍으려면 조리개를 최대한 조이고 그만큼 셔터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그래야 심도가 깊은 제대로 된 사진을 건질 수 있다. 당연히 카메라를 삼각대 위에 올려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파인더에 잡힌 풍경과 맞추어 셔터를 누르는 일은 이제 건성이다. 사랑을 알기 시작한 이모할머니가 사랑을 앓고 있다.
‘볼그레한 얼굴과 연결된/속마음은/얼마나 더 붉게 물들었을까’ 그다음을 더 짐작해 보는 일은 사족이다.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수원에 살던 최대희 시인이 안면도로 거처를 옮긴 지도 제법 세월이 흘렀다. 안면도, 저녁노을이 유난히 아름다운 섬이다. 시인은 오늘 저녁 어떤 상념으로 저 노을 바라보고 있을지가 궁금하다.
최대희 시인
시집 『치즈사랑』 외 다수
경기문학인 대상,농촌문학상 등 수상
한국경기시인협회 사무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