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격변, 예를 들면 아주 드물지만 우리는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운 적이 있었을 것이다. 남이 그러면 좀 이상해지지 않았냐고 의아해하기도 하지만, 이윽고 지난날 자신의 관련 국면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또 같은 상황인데도 분노하다가 배려하고 반목하다가 화합하는 추이가 우리 삶은 물론 문학작품에도 있다. 두 국면을 우리는 무질서하다고 하지 않는다. 반성의 여력에 기인하는 생각과 태도의 변화라고 인정하고, 바람직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또한 우리는 겉으로 웃고 속으로 슬퍼할 수 있는 존재. 그래서 희비극은 이야기의 진행과 변화를 주목하며 명명한 장르가 아니라, 희에 이미 비가 투영되어 있고 비에 이미 희가 작동하고 있는 표리의 사건과 상황을 다루는 작품들을 집성한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시에서, 세 모녀가 불화하고 갈등이 폭발하는 매우 불편한 국면, 즉 비극으로 수렴되는 슬픈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데, 어쩐지 처음부터 그저 가슴을 아프게 저미게만 하지 않는 듯하다.
멋대로 설겠다고
집 나갔던 언니가 모처럼 들어왔습니다
막무가내로 돈 달라고 망치로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기
시작합니다
옛날에는 엄마의 가슴이 석고처럼
부드러워서
못이 쑥쑥 잘 들어갔는데
이제는 콘크리트 벽이 되었나 봅니다
못이 튕겨 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못대가리에서 불꽃이 튀는 소리도 들립니다
언니가 못을 박다 자기 손을 내리쳤나 봅니다
아프다고 펄펄 뛰는 소리가 들립니다
콘크리트에 박힌 못은 빼기 힘듭니다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해집니다
그렇다고 밥만 축내는 내가 달려들어
언니를 말리기도 힘듭니다
엄마의 가슴에 바람이 부딪히나 봅니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립니다
잠시 후, 전기드릴 소리가 납니다
망치로 안 되니까 더 강력한 걸 가져왔나 봅니다
전기드릴 때문에 집이 흔들립니다
참지 못한 내가
전원 스위치를 내립니다
갑자기, 나를 발견한 엄마와 언니가 달려들어
대못 나사못 콘크리트못
닥치는 대로 나에게 박아대기 시작합니다
내 가슴은 합판처럼 얇아서
각종 못이 쉽게 잘 박힙니다
엄마와 언니는 있는 대로 못을 다 박더니
각자 자기 방으로 들어갑니다
내일 아침 엄마는 빨간약
언니는 반창고를 들고 몰래 오다가
내 방 앞에서 마주칠 게 뻔합니다
구멍 뚫린 가슴에서
웃음이 실실 새 나옵니다
- 「꽃 청춘 이모티콘」/신미균
가출한 ‘언니’와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막무가내로 돈 달라’고 ‘엄마’에게 대드는 모습과 화자의 데면데면한 관찰과 진술도 그러하고, 모녀지간을 의심할 정도로 ‘망치’로 ‘대못’ 박듯 격렬한 언쟁이 야기되며, 말의 파편이 거친 금속 조각처럼 튀는 상황이지만, 우리는 곧 쓴웃음, 아니 피식 쯧쯧 혀를 차며 웃게도 된다. 당하기만 하다가 이제 노련해진 ‘엄마’가 이전과 달리 딸의 공세를 잘 막으며 반격하자 ‘언니’는 더욱 악에 받쳐 무진 애를 써 ‘엄마’의 ‘콘크리트’ 가슴에 ‘못’ 하나 박기에 성공하지만, ‘못을 박다 자기 손을 내리쳤’고, ‘아프다고 펄펄 뛰는 소리’를 지른다.
어쨌든 두 사람의 딱한 형편에 화자가 나서서 말릴 만도 하지만 화자는 자신의 방에서 침묵한다. ‘밥만 축내는’ 처지라서’. 아 그러고 보니 이제 화자도, 표출하지는 않지만 언니와 처지와 사정이 다르지 않다. ‘엄마’와 언니’뿐만 아니라 세 모녀에게 문제가 같고 그 원인은 아 지겹게도 바로 ‘돈’이다. ‘돈’이라, 그러니까 화자까지 그러하다면 이 상황은 거리를 두고 우위에선 듯 구경하는 관객이지만 우리의 자세에도 균열이 올 것이다. 물론 재미도 식을 것이고.
‘엄마’와 ‘언니’의 육박전을 넘는 언쟁은 더 악화된다. ‘잠시 후, 전기드릴 소리가 납니다’. 이어지는 화자의 이 진술에서 우리에게서 웃음기가 싹 가시고, 고통으로 슬퍼질 것 같다. 갑작스럽게 변전인가. 하지만 우리는 사실 앞에서부터 웃으면서도 이미 슬펐지 않았나. 그리고 이제 화가 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상황은 또 달라진다. 원수처럼 싸우던 ‘엄마’와 ‘언니’가 이번에는 한 패가 되어 분발하듯 용기를 내어 말리는 화자에게 분기탱천 온갖 비난과 경멸을 퍼붓는다. 사실 ‘엄마’에게 화자는 ‘언니’ 못지않았다. 그저 방구석에 오도카니 유폐된 듯 숨죽이고 있는 화자가 내심 더 밉살스럽고 더 한심스러웠을 수 있고, 언니에게 화자는 자신과 쥐뿔도 다를 바 없으면서도 무슨 중재자처럼 끼어들어 무례하게 말리는 동생이 자신보다 더 미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이유가 전부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엄마’와 ‘언니’, 모녀의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격렬한 한판 언쟁이 한편 누적된 연민과 불만의 애증을 참다못해 드디어 해소하는 방편이기도 하다는 의심을 하였고, 점차 그럴지 모른다는 기대(?)가 커져갔는데, 마지막 두 연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내일 아침 엄마는 빨간약/언니는 반창고를 들고 몰래 오다가/내 방 앞에서 마주칠 게 뻔합니다’. 이제 보니 ‘엄마’와 ‘언니’의 전투는 한두 번이 아니었고, ‘빨간약’과 ‘반창고’는 화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엄마’와 ‘언니’가 서로 말없이 나누는 화해의 지표라는 사실을 안다. 특히 ‘몰래’라는 부사에 그 정리가 잘 시사되어 있다.
우리는 결국 모순 심정에 젖는다. 마지막 연을 읽어보면 화자 역시 그런 듯하다. ‘구멍 뚫린 가슴에서/웃음이 실실 새 나옵니다’. 이는 감정의 격변이라기보다는 감정의 이율배반이고, 새삼스럽지만 우리에게도 낯설지는 않은 우리 삶의 한 양식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