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이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도로를 나누다
지난 일요일 오랜만에 광교산 길을 걸었다. ‘닭살부부’라고 불리는 ㅎ박사 부부는 조원동 쪽에서 산을 넘어왔고 ㅇ시인과 ㅈ시인은 광교저수지 쪽에서 올라왔다. 이날 모인 다섯 명은 모두 (사)화성연구회 회원들이다.
ㅎ박사 고등학교 1년 선배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몇 가지 음식과 막걸리를 시켜 먹고 마시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광교산 로컬푸드 직매장에도 들러 식재료 몇 가지도 구입해 나누었다.
산에서 나오는 길, 하광교 느티나무를 다시 만났다. 이 느티나무는 광교산의 명물이다.
장안구 하광교동 440-7번지, 하광교에서 상광교로 가는 길 중간에 이 거대한 느티나무가 있다. 1982년 수원시 보호수 8호로 지정될 당시의 나이가 370살이었으니 지금은 410살이 넘었다. 나무 높이 20m에 가슴높이 나무 둘레는 4.1m나 되는 이 나무는 건강한 상태로 사방으로 가지를 뻗어 웅장한 느낌을 주는 등 미관도 빼어나다.
특히 이 나무가 사랑받는 이유는 여름철 넓게 드리워진 그늘 때문이다. 등산객들은 이 나무 그늘에 앉아 광교천을 바라보며 땀을 식힌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20대에 광교산에 드나들 때부터 항상 이 나무 아래에 앉아 쉬어가곤 했다. 당시 이 느티나무 아래엔 집이 한 채 있었다. 광교산을 찾는 이들이 급증하고 도로가 확장 되면서 이 집은 철거됐다.
그러나 이 나무는 그대로 두었다. 나무를 보존하기 위해 기존 도로를 확장하지 않고 나무 동쪽으로 새 도로를 냈다. 그래서 이 나무는 도로 가운데 서 있게 됐지만 전혀 위축된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광교천 쪽 예전 도로가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되어 여유로운 풍경이 만들어졌다.
청명중학교 옆 도로를 만들 때도 느티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나무를 가운데 두고 도로를 쪼갰는데 하광교 느티나무 역시 이런 방식으로 보존했다. 당시 담당 공무원이 누군지는 몰라도 이 나무 아래 머물 때마다 “고맙고 또 고맙다”는 마음의 인사를 보내게 된다.
정진규 시인은 생전 어느 인터뷰에선가 안성에 있는 자신의 집 석가헌(夕佳軒)에 300년 정도 된 큰 느티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집에 있는 느티나무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내게 절대적이지요. 우리 집을 지키는 나무여서 마치 당산나무 같아요. 나는 아침에 일어나 나무와 대화를 해요.”라고 말한 바 있다. 그 대화를 ‘하늘 뿌리’라는 시로도 썼다.
보니까 느티나무는 땅의 뿌리와 하늘 뿌리를 다 가지고 있다 땅의 뿌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하늘 뿌리는 하늘 가득 팔 벌려 가지들 끝끝마다 초록 신관 쟁여두고 햇빛 빨판 깊게 당겨 빨아대는 겨울나기다.
이 느티나무를 보면 정진규 시인의 ‘땅의 뿌리와 하늘 뿌리를 다 가지고 있다’는 표현이 실감난다. 그렇다. 하광교의 느티나무는 땅과 하늘로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어찌 보면 커다란 정자 한 채 같다. 광교를 오르내리는 이들이 한 번 쯤은 이곳에서 쉬어가기 마련이니 실제로 정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목의 역할도 하고 있다. 오래된 마을에는 예외 없이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나 은행나무 등이 동네 한 가운데 또는 마을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당산나무로, 신목으로 보호받고 있으며 나무에게 해를 입히면 큰 횡액을 당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광교 느티나무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이 느티나무를 몰래 베어 팔려고 했다. 그런데 나무를 베기 위해 도끼를 들자 마른 하늘에서 별안간 벼락이 내리쳤다. 도벌꾼은 벼락에 맞아 그 자리에 즉사했다. 그 뒤로 더욱 신성한 나무로 여겼다고 한다.
비슷한 전설도 있는데 이 나무를 벤 도벌꾼이 죽고 베어낸 나무의 씨가 떨어져 자라 지금의 거목이 됐다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느티나무의 보살핌 덕분인지 마을은 풍년이 계속됐고 사람들이 하는 일마다 잘 돼 인근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어느 날 인근 마을에서 사람들이 연이어 병이 들고 사람이 죽는 일까지 벌어지자 마을사람들은 인근의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 갔다. 무당은 마을의 액운을 막기 위해서는 하광교 느티나무를 마을 입구로 옮겨다 심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하광교마을 사람들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나무를 내어 달라고 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에 손을 대면 불행한 일이 생긴다며 부탁을 거절했다. 화가 난 이웃마을 사람들은 그날 저녁 몰래 나무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갑자기 비가 쏟아져 불이 붙지 않았다. 며칠 후 다시 불을 지르려고 했으나 흰옷을 입은 산신령이 호랑이와 함께 나무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는 혼비백산해 도망쳤다. 그 후 그는 알 수 없는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일설에는 이 나무가 원래 노송지대에 있었는데 어떤 이가 100여 년 전 사재를 들여 이곳으로 옮겨 기증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나무를 그 먼 곳에서 옮겨 심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나무에 관련된 영험한 전설이 와전되면서 이런 이야기도 만들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전설은 짚신에서 느티나무가 자랐다는 것이다. 한 수행자가 광교산의 89개 절집을 순례하면서 기도하기 위해 이곳에 짚신을 벗어두고 맨발로 광교산에 들어갔다. 아마도 장마철이었는지 비가 계속 내렸고 짚신은 썩기 시작했다. 이를 거름으로 느티나무가 자랐고 오늘날 마을을 지키면서 광교의 상징이 된 거목으로 성장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