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88)] 서순석 '달 달 무슨 달'
달 달 무슨 달
서 순 석
혼혈아 울고 가던
부둣가 뒷골목은
맨발의 철새들이
꿈을 좇는 도래지
철마다
다른 새들이
몸을 묻고 떠난다.
목 좋은 곳
자리 다투는
소리는 달라도
깃 고르는 사연은
내남없이 하나인데
오가는
시선만이라도
수평으로 맞추자
초승달 파인 곳에
내 가슴 솜털 뽑아
차곡차곡 쌓으면
핏빛이 쌓였어도
금가루 흘리며 뜨는
보름달이 안 될까
서순석 시인이 2011년 《수원 詩人》 제2집에 발표한 「달 달 무슨 달」의 전문이다. 우리가 어려서 부르던 동요 「달」의 첫 소절과 같다. 얼핏 자유시의 형태지만 3연으로 된 연시조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시인이 자유시보다는 시조를 더 많이 쓰기도 하지만 이 시가 지닌 기본 율조에다가 각 연의 종장 첫 구 3자가 뚜렷하다.
우리 민족의 심성 속에 자리한 달의 이미지는 무엇일까. 문학 작품 속에서 달은 다양한 이미지로 나타난다. 향가 「처용가」나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는 더할 수 없는 낭만적인 배경이다. 그 밖에도 고매한 인품, 전원의 동반자. 서역으로 인도하는 매개체 그리고 무엇보다 광명의 존재나 절대적 임 혹은 기원의 대상 등으로 대부분 긍정적인 이미지로 달은 자리매김한다.
시의 공간적 배경은 ‘혼혈아 울고 가던/부둣가 뒷골목’이다. 부두는 어차피 양면성의 공간이다. 그곳에는 떠남과 돌아옴, 획득과 상실, 그리고 희망과 좌절이라는 상반된 의미와 상황이 공존한다. 시에서 역시 ‘맨발의 철새들이/꿈을 좇는 도래지’ 즉 철새로 꿈을 찾아든 공간이지만 동시에 ‘철마다/다른 새들이/몸을 묻고 떠’나는 곳이기도 하다. 토박이들보다는 외지에서 흘러들어온 군상들이 뒤섞여 살아간다. 언제부턴가 3D 업종이라고 하여 험한 일들은 외국이 노동자들이 전담하고 있다시피 하다. 소형 어선의 어부 대부분은 동남아 근로자로 채워진 지도 꽤 오래됐다. 그야말로 ‘꿈을 좇는’ ‘맨발의 철새들’이다.
그곳을 생업의 공간으로 하는 상인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철새들이다. 새들은 왜 깃을 고를까. 동물학자가 아닌 필자로서는 쉽게 단정 지을 수가 없다. 그래도 짐작이나 해 보자면 깃을 고름으로 제 몸에 붙은 오물이나 기생충 따위를 떨구고 보다 잘 날기 위한 평소의 준비가 아닐까 싶다. 부두에 모여든 철새들의 ‘목 좋은 곳 자리 다투는/소리는 달라도/깃 고르는 사연은/내남없이 하나’라고 했다. 내일은 보다 높이 그리고 멀리 날기 위해 오늘을 마무리하는 사연은 대동소이하다. 그 소망만은 평등하다. 그래서 시인은 ‘오가는/시선만이라도/수평으로 맞추자’고 한다.
3연이 절창이다. 초승달은 저절로 반달이 되고 보름달이 되는 것이 아니다. 초승달은 오른쪽 아래는 둥글게 호를 그리고 있지만 그 위로는 오목하게 패인 그릇 모양이다. 그 자리에 ‘내 가슴 솜털 뽑아/차곡차곡 쌓’아야 달이 찬다고 했다. 그 깃털들은 부두의 힘겨운 사람살이에 ‘핏빛이’ 묻었어도 그것들이 쌓여야만 ‘금가루 흘리며 뜨는/보름달이’ 되는 것이다. 달이 흘리는 금가루가 손에 닿을 리가 만무하다. 그래도 그 희망만은 주지 않는가.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이.
서순석 시인
《시조문학》으로 등단
시집 『내 자리 네 옆자리』 외 다수
정운엽 문학상 등 수상
경기시조시인협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