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성신(城神)은 감응하시어 우리 수원 번성하게 도우시라”

김우영 논설실장 / 시인
사단법인 화성연구회의 2026년 성신사(城神祠) 고유례가 끝난 뒤 회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사단법인 화성연구회의 2026년 성신사(城神祠) 고유례가 끝난 뒤 회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지난 토요일(1월 10일) 사단법인 화성연구회(이사장 최호운) 2026년 성신사(城神祠) 고유례와 신년회가 열렸다.

수원시 팔달구 팔달산로 228, 팔달산 동쪽 중턱에 있는 성신사는 절이 아니다. 화성을 지켜주는 신을 모시는 사당이다.

‘화성성역의궤’에 성신사와 관련된 기록이 분명하게 남아 있다.

‘병진년(1796년) 봄 특교(特敎)로 집터를 잡으라는 명령이 계셔 택일하여 사당을 지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책은 수원화성 건설 과정과 제도, 의식 등 제반 사항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조선왕실의궤다.

정조대왕은 “화성의 준공을 앞두고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좋은 날을 가려 성신묘(城神廟)를 세우는 것”이라면서 “때에 맞춰 제사를 지냄으로써 나에게 수(壽)를 주고 복을 주며 화성이 만세토록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지시했다.

“제품(祭品)은 7가지, 폐백은 없고 축문은 있게 하라”면서 매년 봄과 가을에 수원유수가 헌관이 되어 고유제를 지내라고 어명을 내렸다. 제문도 손수 짓고 향도 보냈다.

1796년 9월 18일 정조대왕의 왕명에 따라 첫 번째 제가 봉행된 이후 100년 이상 지속됐지만 일제가 성신사를 훼철시키면서 그 명맥이 끊어졌다.

이에 사단법인 화성연구회가 나서 성신사 위치를 밝혀냈다.

‘화성성역의궤’의 설명과 ‘화성전도’ 등 옛 기록, 그리고 일제 시기와 현재의 지적도, 고로들의 증언들을 토대로 주말마다 만나 연구하고 현장을 답사했다. 마침내 당시 팔달산에 있던 강감찬 장군 동상 일대가 성신사 자리임을 밝혀내기에 이르렀다.

2004년 지표조사 때는 ‘왕(王)’자가 새겨진 기와 파편을 발견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현장에 있었던 나는 그 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화성연구회는 2002년 1월부터 매해 복원 기원 고유례를 지내면서 성신사 복원을 기원하는 수원시민의 염원을 모았다.

이에 수원시는 성신사를 중건 복원하기로 결정했고 기업은행도 건립기금을 쾌척했다.

마침내 2009년 10월 8일 성신사 중건식이 열렸다. 이후에도 성신사 고유례는 매년 초 화성연구회 주관으로 봉행되고 있다.

(사)화성연구회 회원들은 2000년경부터 화성 안팎의 미복원 시설물을 찾는 작업을 하면서 중요한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조선시대 수원의 행정관청인 이아(貳衙)와 남·북지, 사직단, 종각, 미로한정, 중포사, 감옥, 성 돌을 뜬 부석소 등의 위치를 밝혀낸 것이다.

화성 성신사 고유례 헌관들. 왼쪽부터 초헌관 최호운, 아헌관 김우영, 종헌관 서주호(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화성 성신사 고유례 헌관들. 왼쪽부터 초헌관 최호운, 아헌관 김우영, 종헌관 서주호(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올해 고유례에서 나는 아헌관을 맡았다. 초헌관은 최호운 이사장, 종헌관은 서주호 부이사장이었다.

당상집례 김용헌, 당하집례 심윤아, 대축 고영익, 알자 윤의영, 전작 이재혁, 봉작 구본성, 사준 김은미, 관세 박현숙 등 회원들이 각각 역할을 맡았다.

고유례는 서립,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철변두, 망료례 순으로 진행됐다.

화성 성신에게 향을 올리는 최호운 이사장(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화성 성신에게 향을 올리는 최호운 이사장.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칼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임에도 70명가량 회원이 참석했다.

수원시에서도 이재준 시장을 비롯, 화성사업소장과 문화체육관광과장 등이 와서 축하해줬다.

이재준 수원시장의 인사말이 인상 깊었다.

인사말을 하는 이재준 수원시장.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인사말을 하는 이재준 수원시장.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이 시장은 최호운 이사장을 비롯한 화성연구회원들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화성연구회의 활동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원화성문화제도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록돼야 하며, 수원화성문화제 행사가 관광산업으로 연결되어 실질적으로 수원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올해와 내년을 ‘수원 방문의 해’로 만들겠다면서 화성연구회 회원들께서 앞장서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고유례가 끝난 뒤 성신사 인근에 있는 식당에서 떡국을 먹으며 신년 덕담을 나눴다.

“성신(城神)께서 감응하시어 우리 수원 늘 번성하게 도우시라”며 잔을 높이 들었다.

수원화성 성신사 고유례는 ‘수원화성이 만세토록 보존되고 수원 백성의 태평성대’를 기원했던 중요한 의식이었다. 무형유산으로서의 가치도 매우 크다.

수원화성문화제, 능행차의례 등과 함께 경기도무형유산을 거쳐 국가무형유산,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도 등재되는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