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89)] 심평자 '억새꽃'
억새꽃
심 평 자
한 생을 눕힐 수도
함부로 꺾일 수도 없는
오기로 살아지더이다
찬 서리 바람 속에서도
검은 머리 하얗게 피도록
부대끼고 흔들리며
살아지더이다
가을 끝자락
조금씩 비워내며
한해를 보듬는
보드라운 손길
하얀 꽃으로
펼쳐 놔야 되더이다
겨우내
속 빈 울음 윙윙대는 건
기약할 수 없는 다음 봄을
조심스레 준비하는
작은 욕심이더이다
2023년에 발간한 《수원 詩人》 제10집에 심평자 시인이 발표한 시 「억새꽃」의 전문이다. 시에 나타나는 어조(語調)는 시적 화자의 태도를 드러낸다. 이 어조는 보통 서술어의 어미에서 파악된다.
전체 4연으로 된 시에서 각 연의 각운을 ‘~더이다’로 마무리하여 시의 통일성과 운율의 획득을 겸하였다. ‘~더이다’는 오늘날 일상의 구어체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예스러운 표현이다. 본래 지난 사실을 돌이켜 생각하여 정중하게 나타내는 서술형 종결어미로 이 어미에는 시적 청자를 높이는 겸양의 태도가 담겨 있다.
이 시의 제목은 ‘억새꽃’이다. 시의 중심 소재 또한 그러하다. 억새꽃이 지닌 본연의 모습에 자아의 삶을 투영시킨 풀어나감이 이 시의 묘미라 하겠다.
‘한 생을 눕힐 수도/함부로 꺾일 수도 없는/오기로 살아지더이다’
이 시를 통해서 억새의 속성을 새삼 생각게 한다. 억새는 그렇다. 대나무도 아닌 것이 눕지도 꺾이지도 않는다. 돌이켜 보니 한 생을 지탱해 온 힘은 오기였는지도 모른다. 오기란 무엇인가. 비록 제 깜냥의 힘으로는 턱없이 모자라도 그렇다고 지기도 싫은 마음이다. 그런 다짐이 그래도 한 생을 부끄럽지 않게 버티게 해주었다.
살아온 날이 ‘찬 서리 바람 속’이었다. 젊은 날의 ‘검은 머리 하얗게 피도록’ 많은 날이 지났지만, 그 속에서도 ‘부대끼고 흔들리며/살아지더이다’라고 회고한다. 이제 계절이 ‘가을 끝자락’이듯 한 생애도 성찰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조금씩 비워내며/한해를 보듬’어야 하는 때이다. 억새꽃은 ‘보드라운 손길/하얀 꽃으로/펼쳐’ 놓고 있다. 우리가 펼쳐 놓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내 계절은 겨울이다. 건곤일색으로 흰 눈이 세상을 덮기도 하고 부는 칼바람에 속이 빈 억새에서는 울음이 새어 나오지만 오히려 그 울음이 ‘다음 봄을/조심스레 준비하는/작은 욕심’이란다.
일 년 중 가장 춥다는 소한에서 대한으로 건너가는 중이다. 당연히 춥다. 그래도 봄을 조심스레 준비해 볼까. 봄이 기다려진다.
심평자 시인
《한국시학》으로 등단
경기시인협회 회원
수원시인협회 회원
《시인마을》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