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156)] ‘삐죽삐죽 튀어나온 김밥 하나’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봄날 강가에 나와 앉아 

홀로 저녁놀을 바라보며 

소풍 나온 아이처럼 

김밥을 먹을 때

문득 히말라야 산촌이 좋아 

네팔 카트만두에 식당을 차리고

김밥 말아 팔던 어느 시인 생각이 났다

히말라야 트래킹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소설가 후배가 찾아가 

김밥을 먹는데

옆구리 터진 김밥을 보고 

갑자기 눈물이 나서

왜 선배가 만 김밥에서 

철학 냄새가 나느냐고 하자

시인은 만년설에 까맣게 탄 얼굴로

흰 이를 드러내며 싱겁게 웃었다

마치 안 팔리는 코미디언이

가족 앞에서 있는 재주 부려가며 웃기다가

자식들이 울상을 짓자

저 혼자 몰래 흐흐거리는 것처럼 우느냐고 

후배 시인을 보고 웃었다   

나는 어느 책에선가 읽은 

그 장면을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남은

단무지며 당근, 햄 소시지 같은 것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김밥 하나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너무 김밥 덩어리가 커서 그럴까

눈물이 삐져나올 정도로 아구아구 씹다가

문득 그 시인이 김밥을 말던 식당 이름이 

‘소풍’임을 기억했다 

봄날 저녁 강가에 앉아

잔뜩 취한 노을을 바라보며

       -「봄날의 소풍」/엄광용  

 

이 시를 읽고 우리는 이 시의 메시지를 잘 알기 이전에 이 시의 배경인 ‘잔뜩 취한 노을’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점멸의 여운에 먼저 젖을 것 같다.  

 ‘히말라야 산촌이 좋아/네팔 카트만두에 식당을 차리고/김밥’ 파는 ‘시인’ 선배를 찾아간 ‘소설가 후배’가 ‘옆구리 터진 김밥을 보고’, 선배의 ‘철학 냄새’가 난다고 응석부리듯 탄식하고 우는 정황에서 우리는 마냥 슬프지도 않고 마냥 웃을 수도 없겠는데, ‘후배 시인’의 흐르는 ‘눈물’은 아름답다. 고국도 시도 후배들도 잊고 살아가는 듯한 ‘선배’가 내놓은 ‘김밥’에는, 지난 날 자신과 같이 심신이 ‘지친’ ‘후배’에게 주려고 크게 말다가 빚은 ‘옆구리 터진 김밥’이 있었다. 이런 사정에서 울컥한 ‘소설가 후배’가 흘린 ‘눈물’은 ‘히말라야 산촌’과 대비되는 세속 도시의 굴레에 매인 자신을 동정하는 자의식의 유로(流露)이며, 자신이 감수한 ‘선배’의 ‘히말라야의 산촌’에서 배양된 자연 ‘철학’이 그 분출의 동기로 여전히 어려 있다고 하겠다. 또 그 ‘눈물’에는 ‘김밥’ 파는 ‘시인’의 낯선 현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으면서 인정하고 싶어 하는 모순 심정도 없지 않을 것이다.       

 ‘시인’ 선배는 잠시 당황하다가 역시 ‘옆구리 터진 김밥’ 같은 아름다운 말을 ‘소설가 후배’에게 하는데, 착종(錯綜)된 미묘한 파동이 우리의 미간과 귓밥에 파고든다. ‘마치 안 팔리는 코미디언이/가족 앞에서 있는 재주 부려가며 웃기다가/자식들이 울상을 짓자/저 혼자 몰래 흐흐거리는 것처럼 우느냐’. 

 ‘안 팔리는 코미디언’ 가장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후배 시인’이며, 자신을 그 ‘자식들’의 하나로 비유했다고 하겠다. 즉 ‘시인’ 선배는 소설가 ‘후배’에게, 우리는 겉만 좀 다르지 애초나 지금이나 가족으로 동류(同類)인데, 뭐 그런 어색한 감회 유출을 새삼 굳이 연출해서 분위기를 어색하게 하나, 이러고서 너는 ‘몰래’ ‘싱겁게’ ‘흐흐’ 웃을 테지. 과분한 언사를 삼가자는 취지의, 겸양과 농담과 배려와 힐책이 어우러진 대응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추정해볼 여지도 또한 있을 것이다.

 이야기에 이야기가 있는 이 액자시(額子詩)에서 처음과 말미의 겉 이야기에서 직접 등장해 어느덧 자신의 ‘김밥’ 이야기를 진술하고 있는 화자와 그 마음의 상태를 우리는 정작 주목해야 한다. 화자는 먼저 ‘봄날 강가’에서 ‘소풍 나온 아이처럼/김밥을 먹’는다. 그래서 ‘카트만두’ 그 ‘식당’의 ‘김밥’ 이야기를 할 수 있었지만, ‘때’가 바야흐로 ‘저녁놀’이 그윽한 황혼의 시간으로 심상한 정경이 아니다. 우리를 궁금하게 하는 화자의 사정은 말미에서 보다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남은/단무지며 당근, 햄 소시지 같은 것이/삐죽삐죽 튀어나온 김밥 하나를/입안에 털어 넣’고, 자신의 의지로 자신을 격려하듯 ‘눈물이 삐져나올 정도로 아구아구 씹’는 화자. 이 모습에서 유추되는 화자의 철학은 아무래도 ‘히말라야 산촌’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화자는 세속에 매인 자신의 삶을 그대로 이어가며 끝까지 치열할 것을 각오하고 있다고 추정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행 직후에서, 화자가 자신이 소개한 속 이야기 두 사람의 철학도 인정하며, 궁극에서 합치된다고 시사하는 의사를 읽을 수 있다. 화자는 그 김밥을 그렇게 먹다가 ‘문득 그 시인이 김밥을 말던 식당 이름이/‘소풍’임을 기억’한다. 이 기억에서 우리는 화자가, 어떻게 살든 결국 삶은 ‘소풍’이라고 각성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화자는 말미에서도 ‘잔뜩 취한 노을’이라며 ‘저녁놀’을 부각하는데, 화자는 현실을 가열 차게 살면서 한편  가끔 ‘잔뜩 취한 노을’ 같이 취하며 위로를 받는다는 자신의 측면을 암시한다고 여겨진다.   

 끝으로 우리는 이 시 ‘소풍’ 모티프의 한 선행 ‘가족’으로 천상병의 시 「귀천」을 상기할 수 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소풍’은 ‘소풍’이지만 세상을 보는 눈과 사는 방식이 다르며, ‘스러지는 이슬’과 ‘삐져나’오는 ‘눈물’로 ‘귀천’에 이르는 과정도 서로 다르다. 그렇다면 「봄날의 소풍」을 우리는 ‘소풍’ 모티프의 전개에서 주목해볼 한 계왕개래(繼往開來)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