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소리
한 인 철
늑대는 어둠을 향해 수탉은 여명을 향해
울부짖었던 사이 두드러지는 적막강산에
차고 넘치는 이야기
언제까지 들리랴
어둠을 사냥하는 전등불에
전설이 시들해진
탐욕의 응답인가
콘크리트에 혼쭐이 난 풀벌레의 난
자연산 쇠똥구리 한 마리에 붙인
현상금 일백만 원인 대한민국에 벽보
눈물이 나도 모깃불 타는 소리
콩나물 커가는 물방울 소리
지금은 잠꼬대가 되어버린 그 옛날 전설
한인철 시인이 지난해 《수원 詩人》 12집에 발표한 시 「어둠 소리」 전문이다.
누가 뭐라 해도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제대로 된 시간은 밤이어야 한다. 겨울밤이면 식어가는 질화로 옆에서, 한여름에는 마당 한쪽에 모깃불을 피어놓고 평상에 누워 “옛날에 옛날에…”로 시작하는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다가 스르르 잠이 들던 게 지워지지 않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그 이야기가 사라지고 있다. 이야기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 속에 든 자연과 그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질서까지 사라지고 있다. 아니, 이미 사라졌다.
사위(四圍)가 모두 적막강산처럼 고요한 밤이어도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차고 넘쳤다. 그 속에는 자연의 섭리가 있었다. ‘늑대는 어둠을 향해 수탉은 여명을 향해/울부짖’는 게 순리이고 질서이다. 그리고 그 숱한 이야기 속에 수많은 꿈과 선한 의지를 향한 할머니의 가르침이 있었다.
그러나 전등불로 상징되는 현대문명은 그 이야기 있는 밤의 어둠을 앗아갔다. ‘전설이 시들해진’ 것이다. 인간이 이룩한 문명의 탐욕에 풀벌레들은 콘크리트에 혼이 나고, 쇠똥구리 한 마리 가격이 일백만 원을 호가하는, 웃지 못할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눈물이 나도 모깃불 타는 소리/콩나물 커가는 물방울 소리/지금은 잠꼬대가 되어버린 그 옛날 전설’
매캐한 연기에 눈물이 나도 좋다. 시인은 ‘모깃불 타는 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고 한다. 콩나물을 기르느라 검은 천을 덮은 시루 아래로 떨어지던 물방울 소리가 그립다.
요즘 아이들은 달나라에 계수나무가 있고 그 아래에서 토끼가 절구질을 한다고 하면 코웃음을 친다. 오히려 그건 분화구 때문에 생긴 그림자라고 어른을 가르치려 든다. 영악하다. 대신 ‘저기저기 저 달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옥도끼로 찍어 내어 금도끼로 다듬어/초가삼간 집을 짓고 양친 부모 모셔다가/천년만년 살고지고’라는 훨씬 더 소중한 가르침을 잃고 있다. 한인철 시인의 시 덕분에 해 보는 이런저런 상념이다.
한 인 철 시인
《현대시선》으로 등단
시집 : 『달콤한 인연』
전자 시집 : 『비익조의 꿈』
경기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