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들
박 경 원
야크떼를 아십니까
평지의 게으른 풀들을 버리고
돌무더기 산으로 들어가
각질의 발굽 소리를 내며
또각또각
바위들의 자판 위를 떠도는 무리들
낮게 매복 중인 풀을 뜯어 먹으며
잠 깬 바위를 환청의 무리인 양
계곡 저쪽으로 이끌고 가는
그들의 오래된 관습, 세상은 한순간
돌들이 내는 딱딱한 화음들로 눈이 부시고
그 고요의 너럭 같은 울림 속에서
저녁의 태양 하나
붉은 문장이 되어 사라지기도 하는,
세상의 누구
풀의 오지에서 바위들을 깨워
저녁의 환청 속으로 이동 중인
그 단단한 각질의 악사들을 본 적 있습니까
오늘 박경원 시인의 유고 시집 『등잔』이 빛을 보았다. 시인이 유명을 달리한 지 만 3년이 지나는 날이 오는 9일이다. 그에 맞추어 홍문숙 시인이 시집을 엮었다. 위의 시는 그 시집 속에 들어 있는 「무리들」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시를 통하여 생전의 시인이 얼마나 치열하게 시적 경지를 추구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다른 초식동물이 그러하듯 야크도 비옥한 평지의 무성한 풀숲에서 평안한 일상을 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야크가 아니다. 그들은 ‘평지의 게으른 풀들을 버리고’ 굳이 ‘돌무더기 산으로 들어가’ 그곳에 ‘낮게 매복 중인“ 키 작은 풀들을 취한다. 비록 오르기 힘들어도 그 바위산에는 야크 떼만이 낼 수 있는 ‘돌들이 내는 딱딱한 화음들로 눈이 부시’다.
시는 울림이 있어야 시이다. 시인은 한 마리 야크가 되어 ‘각질의 발굽 소리를 내며/또각또각’ 바위산을 오르고 있다. 야크의 발굽이 너럭바위를 딛으며 내는 울림은 ‘저녁의 태양 하나/붉은 문장이 되어’ 적요의 평원에 퍼지는 울림이 된다.
시의 첫 줄에서 시인은 ‘야크떼를 아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리고 맨 끝줄에서는 ‘그 단단한 각질의 악사들을 본 적 있습니까’라고 다시 묻는다. 그 물음들 속에 시인이 평생 추구해온 시인으로서 정체성에 대한 자긍이 있다. 시인이 바로 단단한 각질의 악사였다.
그리고 보니 입춘이다. 몇 날은 또 앙칼진 꽃샘바람이 불겠지만 그래도 꽃은 핀다. 시인이 떠난 날도 삼 년 전 입춘 직후였다. 그가 영면을 취하고 있는 안성의 추모공원 앞산에도 붉은 영산홍 꽃무리 다보록 필 것이다. 시인이 울리는 단단한 각질의 화음에 젖어
박경원 시인
1963년 경기도 안성 서운 출생
199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1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
계간문예지 『차령문학』 발행인
시집 『시멘트 정원』외 다수
2023년 2월 9일 영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