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159)] ‘그야 창자를 끊으면 무얼하겠오’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지난 주 수요일 밤에 가형과 저명한 경학자(經學者)가 삼성역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어느 안전문에 게시된 육사 이원록(1904-1944)의 시 한 편을 읽고, 카톡으로 보내왔다. 「산」. 필자는 처음 읽었는데, 일제 치하 비범한 우국충정을 주류로 하는 육사의 시세계에서 일단 낯설어 보였다. 어머니의 사랑을 기리며 통절하게 불효를 자인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회한 토로. 근간 고향의 노모가 많이 편찮아 남매들이 근심이 짙어 가형이 왜 이 시를 지나치지 않았는지 직감으로 알았다.  

 참고로, 이 시에서 1연 1행의 ‘날여’는 ‘날려’, 2행의 ‘뛰여’는 ‘뛰어’, ‘달여서’는 ‘달려서’로, 2연 2행의 ‘역겨’는 ‘엮여’로 철자를 달리하여 읽어야 하겠다.    

 

바다가 수건을 날여 부르고

난 단숨에 뛰여 달여서 왔겠죠

 

천금(千金)같이 무거운 엄마의 사랑을

헛된 항도(航圖)에 역겨 보낸 날 

 

그래도 어진 태양(太陽)과 밤이면 뭇별들이 

발아래 깃들여 오고

 

그나마 나라 나라를 흘러 다니는

뱃사람들 부르는 망향가(望鄕歌)

 

그야 창자를 끊으면 무얼하겠오

 

 이 시도 「광야」나 「절정」처럼 일부 시행에서 상징성 환유 등을 적용하고 있다. 시의 미학에 따라 형상화에서 바람직하지만 일제의 지독한 검열을 더 의식하고 그 통과를 기도한 조사(措辭)일 것이다. 시행의 메시지들과 상관되지 않는 제목 ‘산’부터 그러하다. 우리는 이 시를 다시 읽으며 2연 ‘천금같이 무거운 엄마의 사랑을/헛된 항도에 엮여 보낸 날’을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이다. 

 선원(船員)인 화자는 자신의 직업인 대양을 종횡하는 항행에 종사하였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항해의 궤적인 항도(航圖)를 ‘헛되다’고 하며 비탄에 잠긴다. 자신의 이력과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엄마의 사랑’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지만 없을 수 없었던 자책의 죄의식 때문일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 대목에서 화자가 그간 현실에 동분서주하며 평소 그런 의식 표출을 미봉하였으나, 현재나 직전에 ‘엄마’에게 어떤 변고가 발생해서, 그런 후회에 포박되어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시가 한 선원의 절절한 사모곡에 국한되지 않고 어떤 상황을 비유하고 있다고 유추할 것이다. 

 즉 ‘헛된 항도’는 이 시의 시인 육사의 삶을 우리가 상기하면서 혹시 일제 치하 자신의 독립운동 이력의 환유가 아니겠느냐는 추정부터. 시 감상에서 이런 해석을 늘 자제하여야 하고, 아무래도 그럴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신중을 거듭해야 하지만, 만해, 육사, 이상화, 윤동주 등의 시는 시대의 문제와 부조리 극복에 연관된 지취의 표명으로 메시지를 해석하여야 오히려 합당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퇴계 이황 선생의 14대손인 육사는 어릴 때부터 조부 이중직(李中稙)과 아버지 이가호(李家鎬)로부터 가학(家學)을 전수받았고, 10대 중반에 이미 유학 경전 공부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시경』의 시와 그 서문, “詩者志之所之也(시는 사람의 뜻이 전개된 바이다) 在心爲志(즉 마음에 그대로 있으면 내면의 뜻이며), 發言爲詩(말로 드러내면 시가 된다)”를 읽었을 것이고, 작시에서 영향 받았을 것이다. 육사의 시가 모두 시대의 고통과 그 해결을 열망한 고뇌의 알레고리라고 할 수 없지만, 이 시도 아무래도 그 계통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전체 감상에서 먼저 고려해야 할 기본 조건은 작중 상황과 사정의 시제가 현재가 아니라 과거라는 전제이다. 1연 2행 ‘왔겠죠’는 그 공간이 2연 1행의 ‘엄마’의 곁과 4연 2행 ‘망향가’의 고향에 연관되어 있어, 이를 근거로, 화자가 뒤늦게 고향으로 돌아와 후회하며 지난날의 처지를 유감스럽게 진술하고 있는 상태로 우선 보아야 할 것이다.  

 1연 1, 2행 ‘바다가 수건을 날려 부르고/난 단숨에 뛰여 달여서 왔겠죠’에서 1행이 어색하다. 아마 최초 발표 지면의 활자 문선에서 한 어절이 간과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추정과 더불어 이후 회한 문맥을 고려하면, 1행은 가정이라야 하여, 그 말미에 ‘그랬다면’을 추가해야 할 것이다. ‘바다가 수건을 날려 부르고 그랬다면/난 단숨에 뛰어 달려서 왔겠죠’. 즉 ‘바다’를 떠도는 내게 ‘바다’가 내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겠다고 ‘수건’ 날리듯 알려주었다면, ‘단숨에’ 고향으로 가 성친(省親)을 감행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는 탄식의 변명이다. 

 여기서 우리는 화자의 원망(願望)이 서려있는 ‘바다가’ 날리는 ‘수건’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 ‘수건’은 권투 경기에서 볼 수 있듯 패자 측에서 항복을 자인하는 상징인 ‘수건’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바다’는 일제가 조성한 식민 상황의 환유로 추정 가능하다. 이 해석은 시행  자체로 보아서는 과람하다. 바로 그래서 시 감상에서 이런 알레고리 해석을 삼가야 한다.  하지만 ‘바다가’ 날리는 ‘수건’이 일반 수건이 아닐 것이기에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2연 2행에서 피력한 ‘바다’ 항행의 ‘항도’가 헛되었다는 탄식은 시인이자 화자인 육사가 독립운동을 하느라 고향의 ‘엄마’를 돌보지 못하며 걱정을 끼쳐 그 불효를 격심하게 자책하는 국면으로 접근할 수 있다. 한편 성과보다 희생이 큰 그 역정을 한탄하는 토로라고 할 수 있다. 3연 ‘그래도 어진 태양(太陽)과 밤이면 뭇별들이/발아래 깃들여 오고’는 이 시 감상에서 또 문제되는 국면이다. 화자는 항행 당시 ‘바다’에는 ‘그래도’ 낮에는 ‘태양’이, 밤에는 ‘뭇별’이, ‘발아래 깃들여’ 온다고 하였다. 무엇이라 추정하기 어렵지만 ‘그래도’에 의거하고  또 ‘태양’의 수식 어질다의 ‘어진’에 의지하여, 그 ‘바다’의 항행이 비록 흐린 날씨와 격심한 풍랑과의 사투였지만, ‘태양’과 ‘뭇별’들이 자신을 포함하여 ‘뱃사람들’을 조명하여 주었다, 즉 각광[脚光 : 무대 앞 아래쪽에서 배우를 비추는 광선(footlight)]을 받았다는 진술이면서, 영예와 자부를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독립운동을 하며 고초를 겪었지만 주변의 인정과 칭양을 받아 감사했다는 취지, ‘태양’과 ‘뭇별’은 말뜻 그대로 이해해도 좋지만, 환유로 접근하면 더 좋을 것이다.  

 4연 ‘그나마 나라 나라를 흘러 다니는/뱃사람들 부르는 망향가’는 직전 3연보다 2연 ‘헛된 항도’ 탄식에 더 관련돼 있어 보인다. 끊어졌다 이어지는 구성. 2연의 비탄을 고조하며 마지막 5연 ‘그야 창자를 끊으면 무얼하겠오’란 마무리를 위한 조치로 보인다. 4연과 5연을 다음과 같이 부연할 수 있을 것이다. 늙은 ‘엄마’와 고향을 떠나 자신을 포함해 ‘뱃사람들’이 먼먼 이역에서 전전하며 ‘그나마’ 망향가[사모곡(思母曲)]를 부르다가 단장(斷腸), 즉 창자가 끊어지는 비애에 혼절했었더라도 그때나 이제나 무슨 의의가 있겠는가... 즉 ‘항해’하면서 사모의 비애에 그렇게 절절 슬퍼했었더라도 항해의 운명과 ‘엄마’의 변고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각오의 표출이 아닌가 한다. 이 시 감상에서 우리는 시행의 메시지들과 무관한 제목 ‘산’도 무슨 뜻인지 고려해보지 않을 수 없으나 추정이 어렵다. 상징이기도 하겠는데, 혹 2연 1행 ‘천금같이 무거운 엄마의 사랑’을 ‘바다’와 대조하여 표상한 은유일 수 있겠다.   

 1927년에 대구 조선은행 폭파 사건으로 일제에 피체되었던 육사는 1944년 일제의 베이징영사관의 감옥에서 고문으로 옥사할 때까지, 시를 쓰면서 국내와 일본 중국에서 여러 항일운동에 종사하며 17차 수감되었다. 육사의 이 시를 시대 상황을 전제로 한 모종 알레고리로 접근하는 시각이 오류가 될 수도 있지만, 다른 항일 시와 같은 접근이 허용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상 해설과 연관하여, 육사의 ‘엄마’ 허길(許吉 : 1876-1942) 여사는 1907년 나라가 풍전등화 위기에 직면하자 일군을 몰아내려고 서울 가까이까지 진군하였던 13도창의군의 군사장이었으며, 일제가 세운 서대문형무소에서 1908년에 제1호로 사형되었던 왕산(旺山) 허위(許蔿 : 1854-1908. 9.27) 선생의 오촌 질녀이다. 

 이 시에서 ‘헛된 항도(航圖)’라고 회오하였지만, ‘그래도’ 육사는 1943년 초에, 1932년에 의열단이 세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재학하며 배양했던 무장투쟁의 이념을 지속하며 국내에 무기를 반입하려고 베이징으로 갔었다. 이 일로 결국 육사는 감옥에서 고문으로 피살된다. 예나 지금이나 효와 충이 대립되면 효를 우선하기 쉬운데, 이로 보아서도 육사는 효보다 충을 더 지향한 인물이다. 

 육사는 일제 치하 시인으로는 몇 되지 않는 독립유공 서훈자이다. 그런데 1962년 최초 서훈에서 간과되었고, 1977년에야 건국포장에 추서되었으며, 1990년에 대한민국장(1급) 대통령장(2급) 독립장(3급) 애국장(4급) 애족장(제5급) 중에서 겨우 애국장으로 조정되었다. 독립운동  공헌에 훈격 구분이 없다면 모를까, 시대의 문제 해결에 완인(完人)으로 충실했던 육사의 생애와 제반 시들을 굽이굽이 돌아보면, 육사는 사양하겠지만 아무래도 그간 국가의 처분이 정당하지 않았다. 1930년대 초부터 육사가 당대 국난 극복의 방안으로 사회주의 노선에 치중했기 때문인가. 이제 우리는 독립운동을 바라보는 시야를 보수 진보 어느 쪽이든 우국충정을 기리며 확대해야 마땅하다. 2월 11일(수)에 광화문에서 안동청년유도회가 옛 영남만인소 전통을 이어, 저평가 독립운동가의 서훈 조정과 미 서훈 독립운동가들의 서훈 부여를 민족정기 확립 취지에서 촉구하는 대회를 여는데, 일단 거명하는 저평가 20분 중 한 분으로 육사도 포함되어 있어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